참살이의꿈

내 꿈

샌. 2004. 12. 5. 13:25

겨울비가 내린다. 가늘고 곱게 내린다. 닫힌 창문 사이로 낙숫물 소리가 똑 똑 여리게 들린다.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느끼는 이 계절은 방안의 기온만큼 썰렁하다.

초겨울의 빗소리를 들으며,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는다.

선생님은 우리 글과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참 교육자였고 시대의 예언자였다. '악마들이 하는 짓을 경고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겠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이런 맑은 날에도 하늘은 그 옛날의 하늘빛이 아니다. 흐릿한 잿빛이 좀 섞인 파란빛이다. 산을 보면 여름과 다름없이 흐릿하고, 먼 산은 잿빛으로 가려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언제나 매연으로 덮여 있고 하늘빛이 아주 달라졌다는 사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주식값이며 기름값 얘기, 아이들 학원 보내는 얘기, 병원 문 닫는 애기 따위는 가는 곳마다 나오지만, 하늘빛이 달라지고 산이 안 보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저녁노을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한 해 가운데 하늘빛이 가장 곱고, 저녁노을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때가 늦은 여름부터 가을까지다. 그런데 이제는 가을이 되었는데도 저녁노을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늘이 이렇게 서글프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또는 모르고, 아예 하늘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늘을 쳐다보는 마음이 없다. 하늘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하는 태도다. 사람들의 관심은 다만 돈이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고, 편리하게 기분 좋게 지내는 것이고, 관광이나 보신 같은 것 잘 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인간이란 동물이 아주 망조가 들어 버렸나?


내 꿈은 그 옛날 내가 쳐다보던 하늘을 다시 보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그 저녁노을이 사그라지는 실비단 파르무레한 하늘을 지켜보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다. 봄이면 산기슭에, 밭둑에, 냇가에,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었던 할미꽃을 다시 보게 되고, 여름이면 마을 앞 냇물에 피라미들 헤엄치다가 그 눈부신 비늘을 반짝이면서 뛰어오르고,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벼논에 메뚜기들이 톡톡 튀면서 가을볕을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산과 들과 마을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겨울이면 온 식구가 방안에 앉아 오순도순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승에서 내 꿈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다른 세상에 가서야 그 하늘 그 땅을 만날 수 있을까?


요즘 어느 농촌 지역에서는 행정관청에서 까치 왼발을 하나 가지고 가면 5천 원을 준다고 한다. 그 옛날 아이들이 숙제로 쥐를 잡아서 꼬리를 끊어 학교에 가지고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까치는 옛날부터 제비와 함께 사람에게 이로운 새로 알려져 왔는데, 어째서 그렇게 돈을 들여가면서 기를 쓰고 잡아 없애려고 할까? 들으니까 요즘 까치는 논밭의 곡식을 먹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까치가 벼를 훑어 먹어요"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까치가 그 옛날처럼 흔하지 않다. 참새도 시골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까치도 어쩌다가 한 두 마리 눈에 띄는 정도다. 그런 까치가 벼를 훑어 먹은들 얼마나 먹겠나? 이건 농민들이 논밭에 제초제를 마구 뿌리고, 마당이고 길가고 논둑 밭둑에까지 심심하면 제초제를 뿌려 풀과 나무들이 무섭게 타 죽은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까치가 곡식을 먹게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 없어졌으니, 이제 까치가 먹을 거라고는 논밭의 곡식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려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싹쓸이로 죽이는데 아주 재미를 들였다. 그리고 개구리고 뱀이고 까마귀고 고양이고 너구리고 곰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느라고 환장을 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런 땅에서 복을 받아 잘 살겠다고 제 자식들까지 방안에 가두어 놓고 닭이나 소, 개 기르듯이 '교육'이란 걸 하고 있으니 정말 소가 웃고 개가 웃을 일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이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개나 소나 돼지만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것이 내 꿈이었는데......

- '파란 비단하늘, 새빨간 저녁노을을 보는 꿈' 중에서 / 이오덕

비나 눈조차 마음 놓고 맞을 수 없는 세상이 된지도 한참 되었다.

비의 종류에 이슬비, 소나기 등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 외에도 산성비가 있어서 이젠 비를 맞으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호주에 사는 분의 글을 보았는데, 그 나라는 도리어 비가 오는 날 빨래를 한다고 한다. 빗물에 한 번 더 헹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란다. 비를 마음대로 맞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썼다. 그리고 빗물도 받아 놓았다가 식수로 사용한다고 하니 같은 지구상에 살지만 삶의 질이 천차만별인 것 같다.

정말 아무리 잘 살게 된들 무엇하나 싶다.

땅, 물, 공기를 쓰지 못할 정도로 오염시켜 놓고 아무리 웰빙을 외친들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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