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줄이면 얻는다(少則得)

샌. 2004. 12. 22. 15:28

이사를 할 때면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에 놀라게 된다. 살면서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모아 두었는지, 100kg도 안되는 몸뚱어리 하나 살아가는데 꼭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장롱을 열어 보아도 들어있는 옷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고, 무슨 사교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 입고 다니는 옷들만 해도 꺼내놓고 보면 장난이 아니다.

 

곁가지들 다 쳐내 버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너무 많은 물건들을 보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좀더 간소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 절로 일어난다.


올해는 그동안 당연시하며 사용해 오던 침대와 소파와 식탁을 없앴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 없이 불편해서 어떻게 살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과감히 버리고 나니 지금은 결단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불편을 감내하는 대가로 여러 이득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좁은 집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특히 안방은 이제야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넓은 집이야 걱정 없겠지만, 서민들의 좁은 안방에 장롱과 침대가 들어가면 보통 마음 놓고 앉을 자리도 없어진다. 침대를 들어내고 보니 우선 보기에도 시원하고, 방 하나가 새로 생긴 듯 하다.

 

식탁과 소파도 마찬가지다. 넓어진 부엌과 거실이 주는 효과는 약간의 불편을 상쇄시키기도 남음을 경험으로 확인하고 있다. 가구들이 집안에 가득하게 배치되어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으나, 텅 빈 여백이 주는 정신적 여유도 그만 못지않게 즐길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노자(老子)가 말하는 ‘少則得’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번에 김장을 하고 나서부터는 아내가 부쩍 김치냉장고를 사고 싶어 한다. 김치냉장고가 없는 집이 없다면서, 사시사철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고집을 부릴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지금껏 이런 생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내의 협조 덕분이었다. 그래서 작은 김치냉장고 하나를 바라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여 미안하기만 하다. 선뜻 OK 사인을 보냈으면 진작 샀을 텐데 내 반응은 ‘글쎄, 그게 꼭 필요한 것일까?’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한 김장은마가리 터에다 구덩이를 파고 두 통을 묻었다. 이렇게 멋진 자연 저장고가 있는데 굳이 별도의 냉장고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언젠가는 김치냉장고를 사야겠다며 요사이 광고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가 김치냉장고를 들여놓더라도 할 말은 없다. 어떤 물건을 사오든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줄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에 새로운 품목이 하나 늘어난 것은 아무래도 유감으로 생각될 것 같다.


과연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건은 어느 정도일까? 산 속에 숨어 홀로 살지 않는 한,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며 독야청청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첨단의 신제품이 연신 쏟아져 나오며 소비자를 유혹하는 세상에서 한 발 비켜서서,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가능하면 기계의 영향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바람이다.

 

조금 덜 소비하고, 조금 덜 소유하며, 대신에텅비고 맑은 정신적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고 단순하게  (1) 2005.01.04
빈곤 사회  (1) 2004.12.27
감자 먹는 사람들  (0) 2004.12.11
내 꿈  (1) 2004.12.05
익숙한 것과의 결별  (2) 200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