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빈곤 사회

샌. 2004. 12. 27. 14:18

얼마 전에 두 가지 조사 결과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하나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물었는데, 재테크가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가 건강이고, 세 번째가 가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공의 기준이 돈이고,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선택이란 어쩔 수 없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번째 조사 결과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었는데, 대상자의 60%가 돈 잘 버는 직업을 고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신숭배(物神崇拜)에 젖어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대공원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이들의 소망을 작은 쪽지에 적어서 나무에 달아놓은 소망나무가 있었다. 과연 아이들의 바람이 무얼까 하고 흥미 있게 훑어보았는데, 가장 자주 눈에 띈 문구가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같은 돈에 관계된 내용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현상마저 당연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자가 되겠다고 하면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어른들이 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려는 노력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자기 성취 욕구와도 관계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적 바탕이 없이 오직 물질 추구만이 제일 가치가 될 때, 인간은 추해지고 그 사회는 타락한다. 그렇게 획득한 물질은 일부의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사익 추구를 위한 것이다. 자기 자신 및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도 불고 있는 중년의 10억 만들기 열풍, 그리고 열 살 어린이가 어떻게 1천만 원을 모았는지를 소개하는 책이 화제가 되고 그것이 경제 교육인 양 보도되는 세상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인 사회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재테크라는 것도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재테크의 최고 수단으로 여기는 부동산만 해도 그것이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투기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줄 안다. 집 한 채 구하지 못해 한숨짓는 이웃이 있는데, 오직 이윤이 남는다는 이유로 두세 채씩 집을 사들이며 집값을 올리는데 일조를 하면서 희희낙낙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은 결국 없는 사람들의 몫을 앗아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성 세대 모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두운 사회의 공범들이다.

 

몇 해 전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광고를 타더니, 나중에는 너도 나도 하는 인사말로까지 유행을 했었다. 그 해의 새해 덕담 중 아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말만큼 우리 사회의 천박한 수준을 드러내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고로 노골적으로 이렇게 드러내 놓고 부자 되기를 소망하는 인사말이 동서고금에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자본주의의 원조인 서구에서는 아직도 면면히 흐르는 청교도적 정신이 살아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받아들인 자본주의는 정신이 사라진 껍데기 자본주의이다.

 

그때로부터 몇 년이 안돼 지금 우리는 심각한 경제적 불황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이런 위기가 우리에게는 약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 지상주의, 성장 지상주의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득이 늘고 소비를 많이 하면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환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겠다. 그리고 아직도 빈곤층이 400만 명에 이르고 갈수록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이런 사회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고,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우선하는 개개인이 늘어간다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더라도, 그런 세상은 늘 정신적 결핍과 갈등에 시달리는 빈곤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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