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블로그 1년

샌. 2004. 9. 13. 13:50

블로그를 시작한지 꼭 1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가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세상일은 연속해서 꼬여가기만 하고 앞길에도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나를 지탱해 주던 믿음이나 신념마저 밑바닥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만난 일종의 도피처가 블로그였다.

원래는 홈페이지를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며 홈페이지를 만드는 준비를 했는데 진도가 나갈수록 내 능력에는 벅차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어쩌다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그 간편성에 끌리게 되었고 역시 우연하게 접하게 된 한미르 블로그의 조용한 분위기와 단순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독백의 공간이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있어 개인적인 기록의 의미가 가장 크다. 즉 반공개된 일기인 셈이다. 일기를 죽 써오고 있었지만 블로그는 일기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일기가 자연스런 독백이라면 블로그는 정리된 독백이다. 아무래도 블로그에서는 쓰는 내용이 보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의 꾸밈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블로그에다 공개된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냥 스쳐 지나갈 것도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소한 일상이 어떤 의미를 띄게 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블로그를 아무도 모른다. 무슨 비밀스런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데 아무래도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서로가 부담이 될까봐서이다. 가까운 사람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것도 유쾌한 일은 못되는 것 같다. 이런 것도 성격 탓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블로그를 통해서 노출 욕구와 은폐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출된 공간을 이용하면서 감추려는 모순이 거기에는 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온라인상이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너무 노출되는 것은 꺼림칙하다.

그런 연유인지 나 자신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 들르는 경우도 잦은 편이 아니다.

다른 블로그를 방문하고 코멘트를 남기고 하는 것이 시골에서 마실을 다녀온다는 표현대로 이웃을 찾아가서 사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서 사람 사는 정과 재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블로그를 보면 개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 하다. 바지런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굼뜨고 세상사나 이웃 일에 적당히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 나는 아마도 뒤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나를 찾아와서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분들에게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특히 '바람에게'님, '풀꽃처럼'님, '그루터기'님에게는 더욱 감사하다. '바람에게'님은 블로그를 시작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놀러와 주신다. 나도 자주 찾아가서 귀찮게 해 드려야 할텐데 말이다.

블로그에서는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똑 같이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기뻐하는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현장만큼 살아있는 지혜를 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블로그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블로그는 온갖 견해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얽히고 섥힌 관계망이다. 물론 거기에도 끼리 끼리 어울리는 그룹들이 생겨나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공간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내 생각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나의 최대 화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나에게 있어 삶이란 바르게 살아가는 길에 대한 쉼 없는 물음이며 도전이다. 어렵게 마련한 터살이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블로그를 통해서 나 자신을 점검하고 확인하며 독단에 빠지지 않고 사고가 좀더 유연해지길 희망한다. 또한 이곳을 통해서 같은 길에 공감하는 도반을 만난다면 좋겠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자기 만족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기우뚱거리며 걸어가는 꼬마 뒤로 작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생긴다. 꼬마는 뒤돌아보며 자신의 발자국에 재미있어 한다.

시간이 흐르면 밀려오는 바닷물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발자국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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