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잔디 깎기

샌. 2004. 7. 24. 17:55

지난 여름과 올 봄 두 번에 걸쳐 잔디를 심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의 힘으로 하지만 잔디를 심을 때는 가족이 도와 주어서 같이 땀을 흘리며 일을 했다.

내가 삽으로 잔디를자르면 아이들이 나르고, 아내가 심고하는 식으로 일을 분담하며 한 것이다. 그 여파로 다리가 약한 아내가 잔디를 심은 뒤에 너무 힘주어 밟은 관계로 몇 달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너무 힘이 들었다고 지금도 불평을 한다.

작년에 그렇게 공들여 심은 잔디였는데 그 뒤로는 전혀 돌보지 않아서 크는둥 마는둥 하더니 금년에 들어서는 비료도 주고 물도 주기적으로 뿌려 주었더니 쑥쑥 잘 자라 주었다. 길이가 20cm도 넘게 자란 것이다.

그러니 이미 깎아주어야 할 시기가 훨씬 지나 버렸는데 이제야 시간이 나서 며칠 전에야 낫을 들었다.

낫을 고집한 것은 처음부터 기계의 힘을 빌리기보다 직접 손으로 잔디와 접촉하면서 그 하나 하나와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낫질도 참 오랜만이어서 어린 시절의 아련한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여튼 그렇게 시작한 서투른 작업이 사흘간 이어진 끝에 드디어 완결되었다. 날씨가 더워서 아침 저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여튼 온 몸이 뻐근하도록 열심히 잔디와 만났다.

찾아온 이웃 분이 일일이 손으로 어떻게 깎으냐면서 걱정해 주었으나 아마 속으로는 미련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정말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일이라기 보다는 놀이라고 생각하니까 몸은 피곤해도 결코 정신적으로 피곤하거나 마음이 지치지는 않았다.

또잔디 깎기에 몰두하다 보니 도리어 정신은 맑아지면서마음이 텅 비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바둑이나 낚시 등을 취미로 가진 사람이 그 일에 몰두할 때 세상 만사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고 무심의 경지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잔디 깎기 명상'이라고 스스로 여기며 일을 했다.

같은 일이라도 어쩔수 없어서 하는 일과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이렇게천양지차가 나는 것이다.

잔디를 왼손으로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오른손에 힘을 주면 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한 웅큼의 잔디가 떨어져 나온다. 그리고 상큼하고 향긋한 풀내음이 코로 밀려온다. 그동안 긴 잎의 그늘에 가려 어둡고 축축했던 밑둥이 쏟아들어오는 햇살에 놀라고 반가워서 환하게 웃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런 단순 작업이 반복되면 뒤로는 깔끔하게 정리된 길이 열린다. 내 노동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결과를 바로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서툰 도시인의 작업이 오죽하겠는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꼭 손으로 쥐어 뜯어놓은 것처럼 고르지 못하고 삐죽 삐죽 튀어나온 잎들이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다음 번에는 잔디 깎는 기계를 사서 깎아야 겠다고도 마음을 먹게 된다.

어쨌든 내가 보람을 느끼는 것은 말끔하게 일을 잘 해서가 아니라 땀을 흘리며 한 스스로의 육체 노동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삶이란 것이 머리와 입으로 살아온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손과 몸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일진대 비록 어설프긴 하지만 그 길에 들어선 내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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