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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오가는 출퇴근길의 중간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며 옛날 권력자들의 안가로 사용되었던 집들을 헐고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공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몇 종류의 꽃들도 자라고 있다. 흠이라면 너무 인공적이고 깔끔한 것인데, 그래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과거에는 여기가 서슬 퍼렀던 높은 분들의 회식과 밀담 장소였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때 같았으면 감히 옆을 지나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공원 한 귀퉁이에 모란이 피었다가 얼마 전에 보니까 꽃잎이 모두 떨어졌다. 싱싱한 꽃잎이 시들지 않은 채 그대로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동백만큼 비장하지는 못해도 왠지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사진속일상 2004.05.20

흰씀바귀

터가 위치한 마을은 5월이 되면 마을길을 따라 흰씀바귀가 환하게 피어난다. 대개 노란색의 씀바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마을은 특이하게도 흰씀바귀 세상이다. 6년 전이었던가, 처음 이 마을에서 봄을 맞았을 때 길 양쪽으로 하얗게 흰씀바귀가 피어있는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수녀원이 여럿 들어와 있어서 길을 따라 오가는 수녀님들을 보게 되는데, 봄이면 흰씀바귀가 피어있는 길을 따라 하얀 수녀복의 수녀님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무척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이곳의 흰씀바귀는 꽃이 크고 화사하다. 보통 씀바귀에서 느끼는 작으며 약간은 촌스러운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 꽃을 보면 누구나 시선이 끌리게 되고, 그 순수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에 반하게 될 것이다. 사실 씀바귀의 이미지 ..

꽃들의향기 2004.05.19

아빠는 꽃처럼 살자고 했죠

나이가 들수록 동요의 노랫말이 가슴에 저며온다. 어릴 때부터 '파란마음 하얀마음'의 노랫말을 좋아했는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정이 가는 건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동요가 주는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고 옛 동무를 만난 듯 반갑기만 하다. 가끔씩듣게 되는 다른 동요의 노랫말들도 어쩌면 그리 이쁜지 모르겠다. 옛날 노래 가사에는 인간의 순수한 그리움이나 정이 자연과 잘 조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며칠 전에 '파란마음 하얀 마음'의 노랫말을 지으신 어효선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옛날에 부르던 동요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 분이 지은신 노래 중에서 널리 알려진 세 곡의 노랫말을 다시금 흥얼거려 본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

길위의단상 2004.05.18

반가운 손님

빈 터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작년에 흙을 들여와깔아놓은 터에 봄이 되니 하나 둘씩 풀들이 나기 시작한다. 흙 속에 들어있던 씨들이었는가,아니면 바람을 타고 날아왔는가, 맨 땅이 초록 옷을 입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잡초라고 부른다. 사실 이름을 모르는 풀들도 많다. 그러나 그 중에는낯 익은 꽃을 피우고 미소짓는 것들도 있다. 대부분은 꽃이 아주 작아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다. 척박한 땅에 터를 잡고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저것들이 귀엽고 반갑다.

참살이의꿈 2004.05.16

날아라 버스야 / 정현종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 꽃다발을 든 사람이 무려 두 사람이나 있다! 하나는 장미 - 여자 하나는 국화 - 남자 버스야 아무데로나 가거라. 꽃다발을 든 사람이 둘이나 된다. 그러니 아무데로나 가거라. 옳지 이륙을 하는구나! 날아라 버스야, 이륙을 하여 고도를 높여 가는 차체의 이 가벼움을 보아라. 날아라 버스야! 오래 전 일이지만 시내 버스가 노선을 벗어나 엉뚱한 길로 달려서 신문의 가십거리가 된 적이 있다. 그 때 운전 기사의 말이 재미있었다. "매일 똑 같은 길로만 다니려니 답답해서 아무데로나 자유롭게 막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은 버스를 하늘로 날리고 있다. 버스 안에 꽃다발은 든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것도 유쾌한데, 그 버스는 땅에서 떠올라 하늘을 난..

시읽는기쁨 2004.05.14

신록

신록의 계절이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에서 신록을 유년과 장년과 노년으로 나누었는데 아마 지금의 신록은 유년과 장년의 사이쯤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른 봄, 이제 막 나무에서 새 잎이 나온 직후의 연한 연둣빛 색깔을 좋아하지만 지금처럼 아직 녹음에 이르기 전, 연초록의 빛깔이 나무를 감싸고 그래서 온산이 초록 물감으로 뒤덮인 이 때도 좋다. 사람으로 치면 파릇파릇한 십대의 모습일 것이다. 확실히 신록에는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묘한 힘이 있는 듯하다. 지난 주말에 고향을 다녀오며 대둔산에 들렀다. 나이가 들어서 찾는 고향은 이미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많은 것들이 낡고 허물어지고, 어릴 적 동무들은 그 자리에 없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병과 세월의 무게 앞에서 힘들어 하신다. ..

사진속일상 2004.05.13

웰빙 유감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마시는 물이 화제가 되었다. "서울 부자들은 새벽에 뜬 한라산 약수를 비행기로 공수해 와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신다고 해." "몸에 좋다고 바다의 심해수를 사다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웰빙을 실천하자면 돈이 많아야 한다니까."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식을 줄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고 보게되는 웰빙이란 무엇인가? 웰빙의 시초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웰빙 바람은 변질되어 뭔가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라지만, 웰빙도 몸과 건강에 대한 환상을 키우며 상품 판매와 소비에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덩달아 매스컴이 부추기는 얼짱, 몸짱 신드롬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바닥에는 우리 ..

참살이의꿈 2004.05.12

사람들은 모두 불쌍해

한미르 커뮤니티에 김정란 님의 '현대시 읽기'라는 칼럼이 있다. 몇 번 게재되다가 지금은 글이 올라오지 않아 아쉬운데, 옛 글 중에서 공감이 가는 내용이 있어 옮겨 본다. 김정란 님은 언젠가 TV 프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시인이 정치 토론 프로에 나온게 특이해서 유심히 지켜 보았다. 보수쪽 공격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현실에 비판적이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눈이 느껴졌는데 이 글에서도 비슷한 것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불쌍해! 나도 불쌍하고, 너도 불쌍하고, 우리 부모님도 불쌍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불쌍하다.'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 가끔식 찾아와 가슴이 아려지는 요즈음이다. 누구든 자기 한 몸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지요. 조금씩 그 고통을 가볍게 만들기..

길위의단상 2004.05.11

자운영

자운영(紫雲英)..... 자운영은 상상 속의 꽃이었다.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꽃의 이름이 고와서일까, 봄이면 남도의 논에 지천으로 피어난다는 자운영은 내 마음속에서도 곱게 자라고 있었다. 자운영은 고우면서도 왠지 슬픈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름을 불러보면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뭔가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듯한 소녀의 모습이 연상되는데, 몇 해전에 읽었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책의 제목도 그런 느낌을 더해 주었다. 며칠 전에 전북 봉동을 지나다가 논에 피어있는 자운영 꽃밭을 만났다.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와, 자운영이다!"하고 감탄하는 소리에 차를 세우고 논에 내려섰다. 이곳 저곳 논 가득히 마치 가꾼 듯 자운영이 피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자운영을 한꺼번에 본 것도 처음이었다..

꽃들의향기 2004.05.10

그리스도의 수난

어제 밤에 본당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을 상영했다. 많은논란과 화제가 된영화라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작고 선명하지 못한 화면 등이 흠이었지만 꼭 옛날의 시골 극장같은 분위기여서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영화는 그리스도의 체포로부터 죽음까지 하루도 못 되는 마지막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성서에 충실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다는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논란이 되었다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대체로 성서에서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성서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영화를..

읽고본느낌 200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