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13 추석

샌. 2013. 9. 20. 21:56

 

 

 

동생네가 도착하기 전 셋이서 미리 송편을 빚었다. 모양새도 사람에 따라 세 가지로 나왔다. 나는 큼직하게 양손으로 눌러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 손가락 자국이 굵게 나온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 손가락 자국이 나는 건 상놈이 빚는 송편이라면서 절대 누르지 못하게 배웠다 하신다. 아내는 어릴 때 익힌 전라도 식이다. 송편소로는 콩, 깨, 밤 세 가지를 썼는데 내 몫은 콩이었다. 나중에 보니 콩을 너무 많이 넣어 송편인지 콩떡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송편을 찔 때 전에는 솔잎을 깔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송편이 '솔잎 떡'이라는 의미의 '송병(松餠)'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다음에는 번거롭더라도 뒷산에 다녀와야겠다. 아무래도 솔 향기가 배어야 제맛이 날 것 같다. 아무리 먹을 게 풍성하더라도 송편이 빠진 추석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어머니가 옛 어른들한테 들은 말 하나를 전해준다. 추석에는 보리씨도 내다 버렸다는 것이다. 먹을 게 많아 배부르니 이젠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곤 다음날 배가 고프니 다시 버린 보리씨를 주우러 갔다는 얘기다. 그만큼 한가위는 넉넉하고 풍요로웠으나, 멀리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에 대한 말씀이다. 요사이 추석은 위장이 아니라 관계의 스트레스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친다. 명절의 패러다임도 변해야 할 것 같다.

 

 

 

두 달 전에 동생이 손자를 봤다. 나에게는 4촌 종손이 된다. 아직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명절을 쇠러 먼 데서부터 찾아왔다. 아기 덕분에 집안에 웃음소리가 더해졌다.

 

올해는 막내가 산소 벌초를 해서 한결 편했다. 동생은 농촌 일이 과해서 무릎을 절었다. 결혼해서 잘 살아가는 조카들 소식이 반가웠다. 어머니한테서는 널 잘못 가르쳤구나, 라는 가벼운 탄식도 들었다.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는 저 맑은 눈동자 너머에 있는 아득한 깊이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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