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인간의 대지

샌. 2014. 3. 7. 09:26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생텍쥐페리는 조종사라는 개인적 체험을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산문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기능적이기만 한 조종사가 아니라 하늘을 날면서 내려다보는 넓은 세상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비행은 그에게 있어 인간 완성을 추구하는 초월적 모험이었다.

 

감칠맛이 나는 생텍쥐페리의 글은 인생에 대한 사색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누구이고,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내야 할 책임이 있다. 안데스 산맥에서 추락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기요메를 통해 이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정확히 말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우에 대한 책임감은 전 인류를 향한 의무감으로 확대될 때 고귀해진다. 그는 조종사들 사이의 형제애를 통해 인류애가 실현되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생텍쥐페리는 우리들 각자의 세상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자각할 때, 아무리 하찮은 역할일지라도 그 역할을 깨달을 때, 그때에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때에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니까." 비록 청소부일지라도 그가 지구를 깨끗이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자각할 때,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항상 위험한 비행을 하는 생텍쥐페리에게 역경과 절망은 내적 평화와 충만감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때에 평온이 찾아왔다. 포기와 체념에서 인간의 굴레를 넘어서는 해방감을 얻었다. 그것이 인간과 인생의 역설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깨달음이다. 그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진리에 한발 다가섰다. 이를 '충만한 기쁨'이라고 생텍쥐페리는 이름 붙였다.

 

'길을 잃어야 길을 찾는다', 이것이 생텍쥐페리가 <인간의 대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러니 길 잃어버림을 두려워 말라. 현실에 만족하는 돼지가 되지 말라. 저항과 고통을 통해서만 인간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책은 대부분이 비행에 관한 얘기로 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는 체험에서 우러난 글만을 썼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글은 전체적으로 경쾌하면서 심장을 뛰게 한다. 사하라 사막 위를 날아가는 야간 비행을 묘사한 이 장면은 무척 낭만적이다.

 

"밤이 너무나 아름다울 때면 비행 중인 우리는 비행기가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 둔다. 거의 조종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비행기는 차츰 왼쪽으로 기운다. 오른쪽 날개 아래로 마을이 보일 때면, '비행기가 아직 수평 상태로구나.' 라고 생각한다. 사막에는 마을이 있을 리 없는데. 그렇다면 바다의 고기잡이배인가 보군. 사하라사막 한복판에 고기잡이배가 있을 리 없는데.... 그렇다면? 그제야 착각임을 깨닫고 웃어넘긴다. 부드럽게 비행기를 바로잡는다. 그러면 마을이 제자리를 찾는다. 떨어뜨렸던 별자리를 하늘에 다시 화려하게 장식한다. 마을이라고? 그렇다. 별들의 마을이다."

 

생텍쥐페리가 몰던 비행기는 지금의 경비행기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뚜껑이 없는 무개 비행기였다. 당시는 민간 회사들이 대륙 간의 항로를 개척하던 시대였다. 사고로 많은 조종사가 목숨을 잃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살면서 생텍쥐페리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자문했을 것이다. 나태에 안주하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걸 그는 경멸했다. 생텍쥐페리는 도전과 저항을 통해서 초월을 꿈꿨다. 결국 그는 1944년 비행 도중 행방불명 되었고 지구별을 떠났다.

 

<인간의 대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지는 우리 자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대지가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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