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귀가 / 이시영

샌. 2015. 1. 17. 10:38

누군가의 구둣발이 지렁이 한 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히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 마리가 포도에서 으깨어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 쪽을 바라보는 동안

 

- 귀가 / 이시영

 

 

내가 웃고 있을 때 다른 편에선 울고 있는 타자가 있다. 이것만 기억해도 사는 게 좀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 어느 분은 아침에 밭일을 하다가 호미에 찍힌 지렁이를 보고 종일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무던하게 사는 데는 무딘 감수성이 도움이 되겠지만 너무 뻔뻔해지는 건 경계할 일이다. 남을 해코지하고도 낄낄대는 족속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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