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제 분수도 모르고

샌. 2015. 11. 2. 12:24

작년에 아내와 에버랜드에 놀러 갔다. 이 나이에 놀이공원에 가는 게 마뜩잖았지만 오랜만에 신나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였다. 롤러코스터를 비롯해서 마구 흔들어주는 기구가 너무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성장한 뒤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은데 그림으로나 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다. 반대로 아내는 탈 것에는 질색이다. 예전에도 자유입장권을 끊으면 아내가 손해 본 걸 만회하려는 듯 나 혼자서 몇 번씩이나 타곤 했다.

 

에버랜드에 간 날은 소원대로 젊은이들 틈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안내원이 괜찮겠느냐고 묻길래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롤러코스터의 단점은 단 하나,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락만 한다면 몇 바퀴라도 돌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개를 더 탔다. 그런데 폭풍 뭔가 하는 이름인데 원형으로 돌면서 지그재그로 흔들어대는 기구를 탔다가 문제가 생겼다. 어찌나 세던지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내렸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한 게 토할 것 같은 멀미가 나타났다. 겨우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여진이 며칠간 이어졌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젠 놀이기구도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슬퍼졌다. 겨우 회전목마나 타는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나를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 몇 달 지나 헬스장에 가게 되었다. 처음 가 본 헬스장에서도 여러 가지 유혹하는 게 많았다. 처음에는 조심해야 하는데 너무 까분 것 같았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는데 어지러웠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몸을 거꾸로 매다는 기구를 또 탄 것이 잘못이었다. 어지럼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일상생활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으나 거의 두 주일 정도 머리가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언젠가 아내는 세상이 빙빙 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고개를 들다가 갑자기 생긴 증세였다. 계속 토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머리 수술의 후유증이 아닌가 해서 두려웠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다행히 이석증(耳石症)이었다. 귀에 있는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돌이 제 위치에서 떨어져 그렇다고 했다.

 

며칠 전이었다. 머리를 감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 어지러운 감각이 오락가락하며 지금까지 가시지 않고 있다. 에버랜드 놀이기구, 헬스장 때와 버전을 달리 한 증상이다. 공통으로 머리가 갑자기 흔들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하진 않지만 기분 나쁜 어지럼이 꽤 오래 계속된다. 아내의 이석증 증세와 비슷해서 교정 체조를 흉내내 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앞에서 제자리 돌기를 하면 할아버지는 어지럽다면서 손사래를 치셨다. 엄살을 부리는 것 같은 할아버지가 재미있어 깔깔거리며 더 열심히 돌았다. 몇 시간을 돌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젠 내가 할아버지 입장이 되었다. 인생은 돌고 돈다.

 

에버랜드에서 심하게 요동치는 놀이기구는 타는 게 아니었다. 제 분수도 모르고 까불다가 호된 맛을 봤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세상에서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자신은 천년만년 살 듯 착각하는 게 인간이다. 제 한계와 분수를 모르고 나대지 말자. 어리석음이 다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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