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설 무소유

샌. 2022. 12. 7. 11:22

소설 형식을 빌려 정찬주 작가가 쓴 법정스님의 일대기다. 초판이 2010년에 나왔으니 스님이 돌아가신 해에 출판한 책이다. 작가는 스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한 인물을 그릴 때 대체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생각과 삶이 사실 그대로 실려 있다.

 

법정스님 하면 누구나 무소유를 떠올린다. 스님이 봉은사 다래헌에 계실 때인 1976년에 쓴 <무소유>는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고 무소유의 정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님 자신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에 울림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법정스님이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 시자로 있을 때 무소유의 가치를 깨닫는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효봉스님의 걸망을 빨려고 하다가 걸망 안에서 비누조각을 발견했다. 책에 나오는 두 분의 대화다.

"스님, 걸망을 빨려다가 헝겊에 싼 비누조각을 보았습니다. 스님, 그 비누조각은 너무 오래되어 거품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새것을 하나 사겠습니다."

"금강산에 있을 때 시주받은 것이니 얼마나 됐을까, 30년은 됐을 것 같구나."

"이제 향기도 다 빠져버린 것 같고, 때도 씻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화개장이나 구례장에 가서 새것을 하나 사야 합니다."

"중이 하나면 있으면 됐지 왜 두 개를 가지겠느냐. 두 개는 군더더기니 무소유할 수 없느니라."

 

이때 시자 법정은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두 개를 갖지 않는 청빈이 무소유였다. 효봉스님의 헌 비누조각이 무소유라면 새 비누를 갖는 것은 소유였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이 참됨이라면 군더더기를 갖는 것은 속됨이었다. 시자 법정은 그 순간 부엌으로 들어가 모든 식기와 살림살이를 한 개씩만 남기고 다 버렸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7, 80년대 반독재 운동에 힘을 보태셨다. 나라만 아니라 불교도 바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가도록 필력을 보탰다. 성철스님은 "붓 들고 글 쓰는 사람 중에 법정만 바른 소리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뒤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17년 동안 수행하시고, 강원도 산골로 은둔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 법정 스님은 '맑고 향기롭게'라는 사회 운동을 전개하고,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과는 종교를 넘어선 교류와 협력을 했다. 법정스님 하면 길상사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김영한 보살이 대원각을 스님에게 기증하면서 도심에 청정도량이 생겨났다. 스님은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스님의 말씀과 삶은 우리에게 맑은 가난의 행복과 소박함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것은 깨어 있는 삶의 바탕에서 가능한 일이다. 무소유란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너무 많이 소유하면 군더더기/찌꺼기의 삶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소유의 감옥에 갇혀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대체로 감지한다. 자신에게 열쇠가 주어져 있건만 감옥의 자물쇠를 열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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