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인간의 세 가지 편향

샌. 2023. 4. 4. 12:29

인간이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 두뇌는 불완전하고 허점 투성이다. 군중 심리에 쉽게 매몰되고 형편없는 신념을 금과옥조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보면 근거의 박약함에 한숨이 나올 정도다. 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에 더 가깝다. 앞으로 AI 시대가 되면 인간의 설 자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궁금해진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너무 건방진 말이 아닐까.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고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심리학이 제시하는 인간이 범하는 세 가지 편향 오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견해나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한다. 인간은 진실을 믿기보다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존재다. 누구나 자신이 틀렸고 멍청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온라인에서 확증 편향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해 주는 사람과만 대화를 나누고 원치 않는 정보는 외면한다. 온라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튜브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만 선택해서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인 사람이고 주로 그런 내용을 검색한다면 유튜브는 반대쪽 주장은 필터링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시청자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서겠지만 세상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주는 위험이 있다. 인간은 묘하게도 그런 데서 쾌감을 느끼고 쉽게 빠져든다.

 

정도의 차이지 누구나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진다. 내가 볼 때 확증 편향은 나이가 들 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노년이란 세상을 산 경험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류의 자기 경험과 신념을 중시하게 되면 여지 없이 확증 편향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주변을 돌아보면 정치적 견해가 강경파인 자들은 대체로 확증 편향에 빠져 있다. 좌나 우나 똑같다. 확증 편향은 사고가 유연하지 못한 결과이고, 특히 노년에 경계해야 할 오류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는 과소평가하면서 아는 것은 실제보다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오류다. 대체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한 법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정치나 종교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적용되지 않나 싶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선동에 쉽게 넘어가고 정치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 종교도 어설프게 알게 될 때 광신도가 되기 쉽다.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머뭇거리게 된다. 인간이 정치나 종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닮은 데가 많다. 극단주의자들의 광신적 행태는 거의 동일하다.

 

얕은 지식에 의한 과잉 오만과 마찬가지로 너무 신중해서 망설이거나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지나친 자신감과 함께 지나친 노파심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즉, 자신을 정확히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인생을 어떻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지의 문제로 귀결하는 것 같다. 

 

세 번째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우리는 자기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접하면 불편해한다. 그래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도 자기 신념에 부합할 때까지 합리화하며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다.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는 인지 부조화의 좋은 예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맛있게 영근 포도를 발견했다. 하지만 포도나무가 너무 높아 여우가 뛰어도 보고 기어올라도 봤지만 절대 포도에 닿을 수 없었다. 이에 여우는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라며 포기하고 떠나버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여우의 마음이 편하리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인지 부조화에 마주칠 때 우리가 자주 보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술을 끊은 지 여덟 달이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끊느냐 마느냐로 고민이 깊었다. 끊어야 할 이유와 함께 안 끊어야 할 핑곗거리도 충분했다. 양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을 때의 상태도 일종의 인지 부조화였다. 술이 선물하는 마음의 위안을 떠올리며 기존의 습관을 유지하려고도 했다. 자기 합리화의 유혹에 맞서는 것은 용기였다.

 

확증 편향, 더닝 크루거 효과, 인지 부조화는 인간 심리에 내재한 현상들이다. 이 셋은 지식 차원이 아니라 내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겠다.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족함이 있는지, 또는 지나친 것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중용(中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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