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성난 사람들

샌. 2024. 2. 8. 11:49

 

지난달에 미국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에미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10부작으로 된 이 드라마는 한국계 배우가 다수 참여했고, 전체적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양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였다. 호기심이 생긴 차에 넷플릭스에서 이틀에 걸쳐 몰아봤다.

 

미국 문화가 낯설어선지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다.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주로 성공한 교포의 삶이 소개되지만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은 주목하지 않는다. '성난 사람들'은 약자로서의 동양인의 심리에 내재한 불만과 트라우마를 잘 드러냈다고 본다. '성이 났다'는 것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틀 안에서 생기는 심리적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확대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아무 연관이 없는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윙)는 마트 주차장에서 시비가 붙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건만 내면에 쌓인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서로를 향한 복수가 충돌하면서 가정으로까지 문제가 확대되고 얽힌다. 이 드라마는 스릴러면서 코미디물이기도 하다.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티븐 연, 앨리 윙 두 배우는 에미상에서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그만큼 둘의 연기는 좋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통속적이면서 찌질하다. 욕망을 쫓다가 좌절하고 상처를 받는다. 뭐,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일 것이다. 대니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에 압박을 받고, 에이미는 어릴 적 부모에게서 받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세안들로서의 또 다른 상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파멸 직전까지 가지만 용케도 잘 헤쳐 나간다.

 

드라마의 결말은 의외였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 대니와 에이미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연민을 느낀다. 겉보기로는 차이가 크지만 둘의 내면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사실 우리는 알고 보면 모두 외롭고 아픈 사람들이 아닌가. 껍데기를 벗고 인간의 본원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모두 하나라고 드라마는 결론을 맺는다.

 

손가락 욕으로 시작된 로드 레이지(road rage)가 여러 사람의 인생을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성난 사람들'은 분노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모든 갈등의 근저에 돈과 욕망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배경은 미국 속 동양인의 삶이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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