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홍세화 선생의 마지막 당부

샌. 2024. 4. 21. 10:27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자 활동가였던 홍세화 선생이 지난 1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였다. 선생은 1970년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에 망명했다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을 내며 일반에 알려졌다. 내가 선생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똘레랑스'라는 말을 이때 처음 접했지 않나 싶다. 그 뒤 귀국해서 저술과 강연, 정치 등 너무 물질적으로 경도되는 우리 사회를 경고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년 전 쯤 선생을 강연장에서 뵀던 기억이 난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주최한 강연회였는데 잠실에 있는 여성회관에서였다. 교사들 대상이었으니 강연 주제는 한국 교육의 현실 진단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프랑스 교육 제도와 비교하면서 아동 학대에 다름없는 우리의 입시 체제를 비판하면서 교육 운동을 격려했다. 그때 단상에서 여러 수치를 제시하며 비감에 젖어 말하던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치인이 자신을 윤석열 정권을 깨뜨리는 쇄빙선이 되겠다고 했는데, 홍세화 선생은 자본주의 체제를 깨뜨리는 쇄빙선이지 않았나 싶다. 불의한 현실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선생은 늘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선생만큼 언행일치의 삶을 사신 분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떠나신 선생을 추모하며 선생이 마지막 남긴 글을 다시 읽어본다. 작년에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다.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 홍세화

 

"부자 되세요!"

반백 나이가 되어 20년 만에 귀국했을 때 한국 사회가 나에게 처음 건넨 인사말이었다. 그것은 그 20년 전 갓 서른 나이에 프랑스 땅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에서 중력이 없는 땅인 듯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또 청년 시절 고문당할 공포를 일상적으로 느끼게 했던 그 무겁고 어두웠던 사회 분위기와도 달랐다. 나를 초청한 한겨레신문 출판국의 자동차가 소공동을 지날 무렵 거대한 전광판에 "부자 되세요!"가 떴다. 내 시선이 그 전광판에 고정됐고 자동차가 방향을 바꾸었을 때도 계속 지켜보려고 몸을 뒤틀었다. 내가 놓친 게 있겠지. 가령 "마음의" 같은, 그 앞부분을 못 본 것이겠지. 그러나 전광판은 다만 '부자 되세요!"를 거듭했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귀결점이 "부자 되세요!"였다.

 

20년 동안의 부재가 나로 하여금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 탓일까. 아니면 IMF 외환위기 상황을 추체험하지 않아 돈의 위력에 무딘 탓일까. 그 얼마 뒤 이번에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를 곱씹어야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랄까,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했다. 열악한 주거 조건에 처한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를 되뇌어 보았다. 그러자 온몸에 밀려왔던 비감이란! 그리고 또 얼마 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아 울산에 갔을 때였다. 시간이 남아 노조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옆자리에 둘러앉아 있던 노조 간부들은 주식투자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300여 조합원 앞에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급기야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조물주 위 건물주'를 희망한다거나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이백충'(한달 수입 200만원인 벌레)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즈음, 이번에는 사회주의자와 사모펀드의 조합이 사회 현안이 되어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주식이라곤 한겨레 주식밖에 없는 나에겐 그 조합 자체가 기이하고 엄중한 것이었는데 대다수 사회 구성원에겐 그 사모펀드가 불법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듯했다. 한겨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일종의 위화감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에게 비감보다 분노가 다가왔다. 사회주의가 능욕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분노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관련하여 쓴 한겨레 칼럼은 독자들에게서 적잖은 비난과 인신공격을 받았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말할 수 있는 것도 특권에 속하는데, 적잖은 입이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실은 신자유주의를 산다. 대부분은 부자이기도 하다. 토마 피케티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사용을 꺼려서 신소유주의라는 말을 쓰는데, 그 논지를 따르면 입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삶은 (신)소유주의를 사는 것이다. 소유주의를 향한 전향이 집단적으로 이뤄졌기에 비판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채 대세를 이뤘다. 소유하라. 소유하라. 소유하라. 소유만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제로섬 게임의 소유주의에서 벗어나 연대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인간성의 항체 요구는 취객이 어쩌다 내지르는 헛소리이거나 루저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게 됐다. 노동의 이중구조, 불평등의 세습구조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과 독선적인 윤석열 정권이 똑같이 어떤 정치철학을 펼치려고 집권했는지 알 수 없는 점도, 그들의 관성에 따라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집권했을 뿐이라는 점으로 설명된다. 시민사회운동의 원천도 적잖게 소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경향은 민주당 집권과 함께 강해졌다. 그만큼 운동의 토대와 방향성은 부실해졌다.

 

최근 프랑스 정치철학자이면서 소설가인 가스파르 쾨니그의 디스토피아 소설 <지옥>을 읽었다. 물질주의, 소비사회, 가상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렸는데, 천국의 게이트가 열리면 세계의 2만 도시로 여행할 수 있는 공항에 닿고 한도 없이 제공되는 신용카드로 최고급 상점에서 마음껏 쇼핑할 수 있다. 소유의 자유를 한없이 누리지만 공항 바깥으로 나갈 수 없고 다른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부지런히 예약해야 한다. 그 누구와도 공항 로비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을 뿐 관계를 맺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주의 허공 속에서 궤도를 따라 도는 두 조각의 먼지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궤도에 오른 우리는 너무나 빠른 스케줄을 따라가느라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누리게 한다는 소유주의가 낳은 것 또한 세계 최저 출생률과 세계 최고 자살률을 보이는 '헬 조선'이라는 지옥도가 아닐까.

 

끝내 냉소와 좌절을 멀리하라고 나 자신에게 지운 다짐은 안간힘으로 어쭙잖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빌려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라는 어설픈 말을 마지막 한겨레 칼럼에 쓰게 한다. 각자의 삶은 각자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총화라고 했는데, 오늘 닥친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과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이 인간의 지배, 정복, 소유, 추출의 대상일 때, 인간도 다른 인간의 지배, 정복, 수탈, 착취의 대상이었다.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이 최악의 날들을 끝내기 위해 자발적 반란을 끊임없이 일으켰지만 결국은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볼 만하지 않을까. 우군이 된 자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도 소유주의가 끝없이 밀어붙인 성장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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