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내가 봐도 우습다 / 안정복

샌. 2024. 4. 27. 11:50

늙은이 나이가 팔십에 가까운데

날마다 어린애들과 장난을 즐기네

 

나비 잡을 때 뒤질세라 따라갔다가

매미 잡으러 함께 나가네

 

개울가에서 가재도 건지고

숲에 가서 돌배도 주워오지

 

흰머리는 끝내 감추기 어려워

남들이 비웃는 소리 때때로 들려오네

 

翁年垂八十 日與小兒嬉

捕蜨爭相逐 점蟬亦共隨

磵邊抽石해 林下拾山梨

白髮終難掩 時爲人所嗤

 

- 내가 봐도 우습다(自戱效放翁) / 안정복(安鼎福)

 

 

순암 안정복 선생은 18세기를 살았던 유학자였다. 이웃 동네에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던 '이택재(麗澤齋)'라는 서재가 있다. 앞에는 영장산이 있고 뒤에는 국수봉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동네다.

 

선생은 성호 이익(李瀷)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며 영향을 받았다. 실학자로 분류되지만 보수적이어서 평생 주자학을 신봉하며 새로운 학문을 추구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 태동하던 천주학도 이단으로 간주하며 배척했다.

 

성리학자에게서는 근엄한 선비의 이미지가 풍기는데 이런 시를 만나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반갑다. 흰 머리 노인이 동네 어린아이들과 산과 들로 어울려 다니는 천진한 마음을 솔직히 드러낸다. 마을 사람들이 놀려도 괘념치 않는다. 선생이 거주했던 이택재 옆으로 개울이 흐르는데 아마 여기서 아이들과 가재를 잡으며 놀았을 것이다. 선생은 여든까지 사셨으니 이 시는 말년에 지은 것이리라. 이택재 뒷산 길을 걸으며 200여 년 전 선생의 흔적을 그릴 때 절로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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