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관악산을 넘다

샌. 2009. 7. 24. 19:19



친구 Y와 관악산을 찾았다. 친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Y와는 30여 년의 인연이 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이 친구 뿐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잊어질만 할 때면 서로 연락이 되고 소식을 주고 받는다.덤덤하면서도 필요할 때면 생각나는 그런 사이다.

 

Y가 지난 번에 술이 잔뜩 취해서 전화를 했다. 내용도 없이 그냥 "형, 잘 난 척 하지마."하는 말과 함께 두서없는 말만 했다. 그건 만날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죽고 싶다는 말도 나왔다. 너무 술이 취한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말았지만 한 번 만나봐야겠다 싶어 이번에 같이 산행길을 만들었다.

 

날은 맑았고 바람은 서늘했다. 지하철 사당역에서 만나서 능선을 타고 연주암으로 줄기차게 올랐다.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단내가 났다. 지난 번의 대화는 서로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모든 게 좋았다.

 



산을 오르는 중에 꼬마 친구를 만났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래서 별로 서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치지만 이 친구는 달랐다. 어린 아이가 혼자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물어보니 초등학교 4학년이란다. 작은 배낭 하나 매고 신발은 끈 달린 슬리퍼를 신고 산을 잘도 올라간다. 그냥 산이 좋아 연주암까지 혼자 올라가는 길이라고 한다. 너무나 기특한 아이였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산길을 걸었다. 쉴 때도 같이 쉬었는데 우리 둘 사진도 이 꼬마 친구가 찍어준 것이었다. 그러더니 산 정상 부근에서는 쏜살같이 혼자 내뺐다. 아마도 할아버지들하고 같이 가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는가 보다. 나중에 다시 만났는데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어려운 코스에서는 도리어 조심하라며 우리를 걱정해 주었다. 뒤에 다시 만날까 했는데 다시 보지 못했다.

 

요사이 산을 찾는 아이가 어디 있는가. 더구나 혼자서 말이다. 너무 신기해서 이 친구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그때 신영복 선생님의 청구동 추억이라는 글이 불현듯 생각났다.

 


 

둘은 서울대 구내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낙성대에 나와 소주와 막걸리로 회포를 풀었다. 오전 9시에 만나서 산행은 오후 2시 30분에 끝났다. 한낮이라 간단히 한 잔 하려 했는데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좋았다.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고 그동안에 쌓인 세월을 점검하는데 옛 친구만큼 정겨운 사람도 없다.

 

하늘 맑고, 바람 서늘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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