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신과 인간

샌. 2012. 1. 26. 08:55


1996년 3월 27일, 알제리에 있는 티베린 수도원에서 프랑스인 수사 일곱 명이 반군에게 납치되었다. 반군은 인질과의 교환 협상을 벌이다가 거부당하자 두 달 뒤 수사 전원을 살해했다. '신과 인간'은 이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반군은 사전에 수사들에게 알제리를 떠날 것을 경고한다. 정부 쪽도 같은 권고를 한다. 그러나 수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기로 결정한다. 거듭된 생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의 부름에 충실히 따른다.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고뇌와 의지를 그려 나간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용 헬기가 굉음을 내며 수도원 바로 위에 떠서 협박한다. 그 소리에 맞서 수사들은 수도원 안에 함께 모여 찬송을 부른다. 헬기 소리가 클수록 찬송 소리도 커진다. 고요한 수도원을 덮친 헬기의 폭력과, 평화를 지키려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어우러져 슬픔을 자아낸다.

 

납치되기 전날, 수사들은 한자리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최후의 만찬을 한다. 카세트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울려 퍼진다. 죽음은 가까이 다가왔다. 카메라는 수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그들의 슬픔과 고통, 믿음과 희망을 잡아낸다. 눈물이 맺힌 수사도 있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어찌 흔들리지 않으랴. 그런 순간을 연기하는 배우들의표정이 일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 중의 하나가 내면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수십 년 간 수도 생활을 한 진짜 수사들 같다.

 

그들은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다. 일부는 떠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기도하고 찬양 중에 함께 남기로 결정한다. 아마 그것이 신의 뜻이라 믿었을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난다는 것은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래야 했을까,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나였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아쉬운 건 비극적인 납치 사건이 발생한 알제리 상황에 대해 영화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영화가 좀 더 긴장감 있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장길산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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