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윤사월 / 박목월

샌. 2008. 5. 8. 11:13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윤사월 / 박목월

 

아마 이맘 때였을 것이다. 동두천 산골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였는데 창문을 열어놓은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한두 시간만 지나면 노랗게 송화가루가 쌓였다. 그 연노란 병아리 색깔의 송화가루가 고단했던 군대생활과 대비되어 무척 슬프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아마 이 시가 떠올랐을 것이다. 군대 막사가 아니었더라면 무척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눈먼 처녀'에서 눈이 멀었다는 것과 처녀라는 것은 인간의 순수성을 표상하는 의미가 아닐까. 세상에 대하여 눈이 멀고, 욕망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은 존재 자체가 자연의 일부분이다. 이 시는 적막한 봄날의 슬픈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그릴 수 있는 이상향의 한 모습으로 나에게는 비쳐진다. 세상이 험하고 복잡해질수록 이런 세계에 대한 동경은 커져간다.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가 얽히고 설킨 작금의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세상에 대해 이젠 그만 눈을 감고 싶다. 눈먼 처녀의 꿈이라도 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