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애절양 / 정약용

샌. 2011. 11. 28. 08:18

갈밭 젊은 아낙 오랫동안 울더니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는다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다 해도

사내가 제 자지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구나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다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다며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간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다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민땅의 자식 거세도 진실로 슬픈 것이거늘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거늘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부자집들 일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만청한다

이네들 쌀 한 톨 베 한 치 내다바치는 일 없다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을 거듭 읊노라

 

蘆田少婦哭聲長

哭向縣門號穹蒼

夫征不復尙可有

自古未聞男絶陽

舅喪己縞兒未燥

 

三代名簽在軍保

薄言往소虎守혼

里正咆哮牛去조

磨刀入房血滿席

自恨生兒遭窘厄

 

蠶室淫刑豈有辜

민건去勢良亦慽

生生之理天所予

乾道成男坤道女

선馬분豕猶云悲

 

況乃生民思繼序

豪家終歲秦管鉉

粒米寸帛無所捐

均吾赤子何厚薄

客窓重誦시鳩篇

 

    - 哀絶陽 / 丁若鏞

 

"나라를 걱정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不憂國非詩也]." 다산의 말이다. 이 시는 다산이 강진 유배 시에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지은 것이라 한다. '이 시는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을 때 지었다. 노전(盧田)에 사는 한 백성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등록되고, 이정(里正)이 소를 빼앗아 갔다.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며 그는 칼을 뽑아 자기의 남근을 스스로 베었다. 그 아내가 남근을 들고 관가에 가니, 그때까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내가 울며 호소했지만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서 이 시를 지었다.'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부패한 세상을 다산은 고발하고 있다. 유배 생활을통해서 그는백성의 곤궁한 처지를 직접 피부로 접하며 함께 울분을 느꼈을 것이다. 동시에 유배지에서 시구편이나 읊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지 않았을까. 잘린 남편의 거시기를 들고 관가에 찾아가 통곡하는 아낙의 심정을 상상하면 애통하기만 하다.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라는 다산의 한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역사에서 광기 아닌 시대가 있기나 했을까, 그래도 역사는 조금씩이나마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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