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사랑 / 고은

샌. 2011. 12. 2. 23:45

사랑이 뭐냐고

문기초등학교 아이가 물었다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궁한 나머지

지나가는 새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네가 커서 할일이란다

 

돌아서서 후회막급

 

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란다라고

왜 대답하지 못했던가

그 아이의 어른은 내일이 이미 오늘인 것을

왜 몰랐던가

 

저녁 한천가

한 사내의 낚시줄에 걸려버린

참붕어의 절망이 내 절망인 것을

왜 몰랐던가

사랑이 뭐냐고 물었을 때

 

     - 사랑 / 고은

 

'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란다'라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두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게 사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보살피는 것도 사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랑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사랑이란 '공감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타자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슬픔이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사랑이 아닐까. 낚시줄에 걸린 참붕어의 절망이 나의 절망임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다.

 

내가 그대를 바라봐서 함께 행복한 것이 사랑이다. 사람들은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지만, 바꿔 말하면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기도 하다.완성으로서의 사랑을얻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것이 사랑의 본질인 '공감의 능력'이다. 사랑이란자아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 가정을 이루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는다.진정한 사랑은 인간의 시야와 인식을 확장시킨다.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 안에 들어 있는 전 우주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사랑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를 주고 싶다. 사랑은 열정이나 애착을 넘어선 그 무엇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열정이나 애착은 식을 수 있지만, 사랑만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사랑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 이 자리의 일이다.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0) 2011.12.16
능금 / 김환식  (2) 2011.12.11
애절양 / 정약용  (0) 2011.11.28
작명의 즐거움 / 이정록  (0) 2011.11.19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바츨라프 하벨  (0) 201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