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멀리 있는 도서관에 가다

샌. 2011. 11. 18. 12:37

아내와 다투고 나면 집이 좁다.

이럴 때는 혼자 걷는 게 약이다.

그런데 오늘은 콧물에 재채기,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다.

새로 생긴 풍물장도 구경하고

각설이 엿도 사 먹고

마침 산 아래에 도서관이 있다.

여자들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나는 책 속에서 모든 걸 잊는다.

조용하고 진지한 공간에 들면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내 마음도 잔잔해진다.

오늘 같은 날은

가볍게 신문을 보고

바둑 잡지를 보고

사진책도 본다.

일회용 커피도 빼먹는다.

혼자 노는 게 재미있다.

 


휴게실 유리창 너머로 책 읽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이 보인다.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 나란히 앉아 있다.

무슨 책일까?

뒤태가 귀엽다.

열람실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그 모습 그대로다.

그놈들 대견하다.

몰래 가까이 가 보니

헉, 만화책이다.

저 무렵 나도 그랬지.

부모님께 들킬까 봐 장롱 밑에 숨겨두고

만화방 들락거렸다.

고개를 돌리고 배시시 웃는

소년의 얼굴에 솜털이 곱다.

아이야,

책과 함께 미래를 밝히라고 하지만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고 잘 사는 어른들도 많단다.

그리고,

미래가 만화만큼 달콤한 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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