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촘스키와의 대화

샌. 2006. 7. 18. 13:52

"미국 정부가 원인 제공을 했으므로 테러의 근본적인 책임은 미국 정부에 있으며, 만약 미국 정부가 국제법 절차에 따라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이야말로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희생시키는 테러 집단이다."

이 말은 9. 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한 촘스키(N. Chomsky)의 말이다.

테러 직후 미 전역이 경악과 분노에 휩싸이고 전세계 언론과 지식인들이 한 목소리로 테러에 대한 성토를 하고 있을 때, 보복을 반대하며 미국의 책임을 강조한 촘스키의 메시지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와 같이 촘스키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린다.

전공은 언어학이지만 그분의 관심은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세상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집중되고 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세상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준다.

이번에 촘스키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단편적이지만 몇 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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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지식인을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십니까?


마음가짐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 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훌륭한 지식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거꾸로 이런 이상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대학교수들과 저술가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 선생님은 진실을 무엇이라 정의하십니까?


이 책을 보십시오. 이 책은 지금 의자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꾸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현실을 사실대로 설명할 때 우리 모두가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 선생님은 오늘날의 권력을 무엇이라 정의하시겠습니까?


권력의 중심은 부자 나라들에 있습니다. G3, 때로는 G8로 일컫는 최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기업들,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들어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과점(寡占) 형태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과점 형태의 시장으로 변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강력하고 전제적인 힘을 지닌 소수 집단이 초강대국을 등에 업고, 때로는 국가의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면서 일부 경제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IBRD, IMF, WTO와 같은 국제기관들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WTO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전쟁무기와 다름없습니다. WTO의 목표는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니까요.


- 민주 사회가 공공의 이익이란 대의(大義)를 상실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주 사회의 어떤 집단이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엘리트 집단은 그들의 특권과 권한을 강화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넋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투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발전이 있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권이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무척이나 느릿한 발전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물론 권력층은 이런 변화를 막으려 안간힘을 다합니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다툼은 계속될 것입니다.


- 선생님은 한 집단의 사회 지배력이 커질수록 그 집단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앞세워 권력을 강화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표현대로 ‘개똥철학’ 즉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런 흐름을 꿰뚫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가담합니다.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육제도가 선별 작용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강요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이것은 기계처럼 빈틈없이 운영되는 메커니즘입니다.

당신이 이런 체제에 살고 있으면서 체제의 규칙에 어긋나는 어떤 일을 하려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필경 당신 상관이 당신을 불러, “이보게, 너무 감상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네. 성공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라고 타이를 것입니다. 결국 당신은 방향을 선회합니다. 현실과 타협합니다! 뛰어난 조사 전문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이 곧대로 쓰지 못합니다. 진실의 조각을 기사 속에 은밀히 끼워넣는 것에 만족합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눈치조차 못채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변 문화에 동참해서 그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갑니다.


- 자본주의 모델을 대체할 경제 모델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본주의요?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 그렇다면 현재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래서 ‘연대 국가자본주의(Alliance State Captalism)’ 혹은 ‘기업 중상주의(Corporate Merchantalism)’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꼭 들어맞는 명칭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애덤 스미스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던 학자들이 요즘의 자본주의를 본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 선생님께서 특별히 우려하는 결과는 어떤 것입니까?


현제의 경제체제가 붕괴된다면 그 이유는 금융위기나 생태환경의 재앙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경계심도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도 삶에 넌더리를 내면서 자포자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내가 미디어, 학교, 지배 계급의 문화에 반대하여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여론의 압력이 더해질 때는 어떤 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세계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화 자체는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계화는 민간 기업과 국가가 쌍둥이처럼 밀착해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둘 모두 똑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점을 지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입니다. 시장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계화는 미국식 모델을 전 지구에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화의 목표이고 결론입니다.


-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는데요.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일랑 완전히 씻어내십시오. 정부는 국민의 것도 아니고, 국민에 의한 것도 아니며 국민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지배계급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예컨대 텔레비전의 범죄물처럼 아주 단순한 수단을 통해서 우리를 그렇게 세뇌시켰습니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삽니다. 마약 밀매자를 무서워합니다. 심지어 흑인과 외국인까지 무서워합니다. 미국인의 테러에 대한 두려움은 유럽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선전은 국민에게 무력한 존재이고 세상에서 단절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상업적 광고나 선전을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세계는 다음 두 가지에 기반을 둔 세계일 것입니다. 첫째는 텔레비전입니다. 텔레비전은 각 가정마다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과도 단절시키는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엘리트 계급이 우려하는 ‘민주주의 위기’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적 조건에 접근할 수 있다면 대중은 더 이상 부자와 특권층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데 전념할 것이고,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피상적인 것에 열중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단계의 정책 결정에서 ‘참여자’가 아니라 ‘구경꾼’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뇌되어 왔습니다.


-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우를 같은 범주에 놓을 수 있을까요?


물론 둘은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 볼 때 기독교 근본주의와 극우는 같은 종류의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력감에 대한 반발,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 해석됩니다. 나라마다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원인은 하나입니다. 파시즘도 이런 좌절감에서 태동된 것입니다.


- 마르크스주의가 요즘 세상에도 적용 가능한 이론이라 생각하십니까?


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마르크스주의나 프로이드주의처럼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학설은 일종의 종교로 미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학설이나 그 인물을 신격화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한 개인을 신격화한다면, 그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입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도 일종의 종교였습니다. 마르크스를 신으로 떠받들며 숭배하는 종교였습니다.


- 혁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존 생각에 변화가 있을 때 혁명이 일어납니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무너뜨리겠다는 실천적인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지를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키워나가야 합니다. 19세기의 정신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금 노동은 노예제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형태의 지배구조를 찾아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 지금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교, 인텔리겐차, 그리고 여론에 영향을 미치면서 통제하는 연구기관들이 동원되어 국민을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때때로 국민은 세상사를 꿰뚫어보고 있지만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혁명까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령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신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 인터넷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방을 위한 도구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선전 도구라 생각하십니까?


인터넷은 체제 밖의 소식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거대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인터넷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려 합니다. 인간의 소외를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말입니다. 결국 대중이 이런 음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터넷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 현 사회에서 정보의 위상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정보는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정보라 표현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언론은 광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근본적 한계를 갖습니다. 따라서 제도적 관점에서 언론은 민간 기업들에 시청자를 파는 민간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 관계가 밀접히 연결된 국가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한계 내에서도 언론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직업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지난 50년 동안 세계적 차원에서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발전적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많은 점에서 상황이 개선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상징적으로만 개선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개선이 있었습니다. MIT를 예로 들어 볼까요? 내가 재직 중인 학교이기 때문에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까요. 40년 전만 해도 MIT의 신입생은 거의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주 다양한 분포를 보입니다. 약 35%가 소수민족 출신이고, 35%가 여성입니다. 옛날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 선생님께서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이나 위인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있습니다. 러셀은 내가 지적인 면에서는 물론이고 대중적 인물로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러셀과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 완전히 다른 체계의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두 사람은 무척이나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핵무기였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우상이 된 반면에 러셀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줄 아십니까? 아인슈타인은 탄원서에 서명한 후에 연구실에 돌아가 물리학에 전념했지만, 러셀은 탄원서에 서명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길거리 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 선생님을 이처럼 정력적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믿음보다는 희망이라 말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내가 정확히 모르는 것을 믿을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 그럼 양식(良識)을 믿으십니까?


양식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다고 믿을 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 친위대원이 될 수도 있고 성인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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