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백창우

샌. 2006. 2. 21. 09:11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비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든 길 위를 소리 없이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내 안에 뭐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면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나 가벼워질까

아무 때나 혼자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사는 게 고단하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가 한 걸음 내 디디면 세상은 두 걸음 달아난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따라잡지 못 한다

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안개처럼, 바람의 낮은 노래처럼 가벼워져

길이 끝나는 데까지 가 봤으면 좋겠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백창우

 

무겁다. 마음 속에 큰 바위덩이 하나 들어있는 듯 사는 게 무겁다. 무슨 욕심이나 바람, 원망이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가벼워지고 싶다. 나비처럼, 안개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바람의 낮은 노래처럼......

 

모든 것 훌훌 내려놓고 텅 빈 마음으로 길 떠나봤으면 좋겠다. 사람의 발길 뜸한 길을 타박타박 걸어봤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초등 동창 모임에 나가서 내존재의 무거움을 다시 확인했다. 그것은 선대로부터 내려온 업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저 캠브리아기 어두운 바다 속의 수압에 찌들린 흔적일지도 모른다. 내 평생 아무리 흔들어봐야 그 무거운 짐 벗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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