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내가 바라는 세상

샌. 2005. 6. 18. 08:56

나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기보다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자랑하기보다는 좀 못 살더라도 계층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는 정신적으로 풍요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이(利)를 쫓기보다는 의(義)를 먼저 구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몇 년째 그칠 줄 모르는 부동산 광풍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모두가 돈 앞에서는 천박하고 저열해지는 것 같다.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마찬가지다. 국민대부분이 투기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일말의 수치심이나 양심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의식주는생활의 기본일진대 이것은 인간으로서 침해받을 수 없는 권리이다. 제발 다른 사람의 몫을 뺏아 자신의 부를 챙기는 어리석은 짓거리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어느 통계를 보니 다섯 채 이상의 집을 가진 사람이 26만 명이라고 한다. 지금도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무한정 자금이 공급되니 돈 되는 땅이나 집은 가만 남아있지를 못한다. 이런 식이라면 온 국토를 집으로 채워도투기자본은 또 다른 건설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같은 문외한이 봐도 정책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온 국민이 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정부의 의지 조차 의심되고 있으니 답답한 현상황이다.

녹색평론 최근호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혁신을 위한 강수돌님의 글이 실렸다.

경제의 근본 구조가 돈의 논리에서 삶의 논리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존과 공생으로의 개혁이다.

그분은 대체적인 밑그림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1.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부터 산모나 아이나 돈 걱정 없이 가족과 마을의 축복을 받으며 편안한 출산이 되어야 한다. (가정출산, 마을출산, 마을의원, 출산휴가)


2.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유치원이나 각급 학교를 다니는데 돈 걱정 없이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구체적인 형태로 학습하게 해야 한다. (공공교육, 대안교육, 개성교육, 절대평가)


3. 일류고교, 일류대학, 일류직장 개념을 없애고 모두 원탁형 질서로 고르게 해야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고, 살아가는 과정 매 순간마다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 (고교평준화, 대학평준화, 직업평준화, 보상평준화)


4. 3면의 바다와 70%의 산이 가진 천혜의 장점을 살려내는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모순을 극복하는 ‘전원마을 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서야 한다. 전원마을 공동체는 1차 산업 종사자가 70% 정도, 기타 산업 종사자가 30% 정도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어야 도시의 과밀화나 실업자와 노숙자, 고용불안을 없애고, 동시에 농촌의 공동화, 황폐화, 절망화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 (자연적인 먹을거리 생산, 남는 것은 수출, 전원마을 공동체, 남녀노소 모든 이에게 능력과 소질에 따라 할 일을 주되 마을의 자립도가 70%가 되게 함. 네트워크 통신망은 그러한 공동체간 협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 가능)


5. 최소한 땅과 집이 투기나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땅과 집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살다가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어야 할 삶의 터전이다. 우리 사회나 세계 전체적으로 산더미 같은 투기 자본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사실은 부의 편중이 갈수록 격심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적 필요의 충족에 요구되는 부의 생산이 이 정도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투기자본이나 그와 연루된 부정부패의 고리를 철저히 잡아내면(경제 암행어사 제도가 필요하다) 그 돈만으로도 모두의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6. 삶의 질(건강과 여유, 인격과 평등, 공동체, 생태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자리나 경제 분야는 적극 살리고 확대하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자리나 경제 분야는 줄여나가거나 없애야 한다.


7. ‘민주정부’가 할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이러한 삶의 질 중심 구조혁신을 위해 자원을 재분배하는 일(지금처럼 과잉의 건설자본을 억지로 살리기 위한 불요불급한 국책사업 등은 낭비의 극치다), 다른 편으로는 이런 혁신에 저항하는 수구 세력들로부터 참다운 구조혁신을 수호하는 일일 것이다.


8. 동시에 풀뿌리 민초들도 ‘잘 산다’는 이름 아래 지금까지 내면화해 온 돈의 논리와 권력의 논리를 털어내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참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기에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장이나 권력은 결코 민초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한다. 민초들까지 깊이 내면화한 논리,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층에만 편입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수구적 논리는 사실상 자기 위의 강자에게는 아부하고 아래의 약자에게는 군림하는 사다리 질서(강자와의 동일시)를 온존시켜 온 토대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는 그런 사다리를 거부하고 원탁형 질서 속에서 서로 존중하고 연대하는 살림살이를 꾸려나가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시장과 권력의 눈치만 보지 말고 그 모두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다시 민초들의 의식으로 돌아온다.

새 세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위정자들이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아래로부터의 의식혁명을 통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열릴 수밖에 없다.

무척 지난한 길이지만 그래도 모두가 건강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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