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선농단 향나무

샌. 2005. 1. 26. 20:12


 

서울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先農壇)에는 천연기념물 240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선농단은 조선조 때 농업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때 지내던 제사는 축제의 성격이 컸다고 한다. 경칩이 지난 다음 동대문 밖인 이곳에 왕이 와서 제사를 지내고 직접 쟁기를 잡고 농사짓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행사 뒤에는 소를 잡고 가마솥에 곰탕을 끓였는데, 이 탕을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했으며 이것이 뒤에 설렁탕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설렁탕의 기원지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 장소가 각별한 것은 여기가 모교 캠퍼스였기 때문이다. 그때 선농단은 캠퍼스 안에 있어서 우리들의 휴식 동산이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도 하고 토론도 하던 장소였다. 또 그때는 카드놀이가 유행해서 여기저기 카드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저 향나무 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캠퍼스도 사라졌고 선농단도 쇠 울타리로 막아놓아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때는 이 나무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찾아왔더니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선농단 주위는 측백나무들 수십 그루가 볼품없게 심어져 있고, 향나무는 측백나무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향나무의 수령은 약 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30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 옛날 학교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와 빌라들이 들어서서 상전벽해를 실감나게 한다. 골목길을 걸으며 옛날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도시 어디가 어딘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판자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던 정릉천은 말끔히 정리되고 고가도로가 위압스럽게 지나가고 있다.

 

오직 저 향나무만이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새로 들어선 건물들에 포위되어 외롭고 초라하게 보인다. 그건 옛날의 추억에 젖은 나그네의 마음 탓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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