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自祭文 / 陶淵明

샌. 2004. 1. 27. 14:26
바로크 시대라고 하는 유럽의 17세기에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대립되는 관점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이고, 다른 하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삶의 양면성 문제는 존재해 왔을 것이고, 어느 관점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특징이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관점을 택함에 따라 현실 중심적으로 되든지아니면 이상주의로 기울거나 종교적성향이 강해지기도 한다.

카르페 디엠은 삶을 긍정하지만 경박해지기 쉽고, 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좋으나 무겁고 음울해지기 쉽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오히려 메멘토 모리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나치게 물질적이며 현세 만족적인 세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쉽게 무시되고 있다. 죽음 또한 부정되고 기피되어야 할 대상이다.
또한 번쩍이는 문명을 건설한 인간은 너무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며 착각일지 모른다. 정신적 바탕이 결여된 문명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개인으로든 인류 전체로든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도연명의 자제문(自祭文)은63세 때 세상을 뜨기두 달전에 지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아마 자신의 죽음을 미리 내다 보았으리라. 곧 찾아올 죽음을 바라보며 깊은 슬픔 속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인생과 생사의 감회를 진솔하게 적고 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솔직해진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삶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난다.
나도 이 지상에서의 삶이 내일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의 참 위치와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답답해질 때면 이 `自祭文`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흐릿해지던 길이 다시오롯이 나타나 보인다.


歲惟丁卯 律中無射 天寒夜長 風氣蕭索 鴻雁于往 草木黃落 陶子將辭 逆旅之館 永歸於本宅 故人悽其相悲 同祖行於今夕 羞以嘉蔬 薦以淸酌 候顔已冥 聆音愈漠 嗚呼哀哉
茫茫大塊 悠悠高旻 是生萬物 余得爲人 自余爲人 逢運之貧 簞瓢屢경 치격冬陳 含歡谷汲 行歌負薪 예예柴門 事我宵晨 春秋代謝有務中園 載耘載자 乃育乃繁 欣以素牘 和以七絃 冬曝其日 夏濯其泉 勤靡餘勞 心有常閒 樂天委分
以至百年
惟此百年 夫人愛之 懼彼無成 게日惜時 存爲世珍 沒亦見思 嗟我獨邁 曾是異玆 寵非己榮 涅豈吾緇 졸兀窮廬 감飮賦詩 識運知命 余今斯化 可以無恨 壽涉百齡 身慕肥遁 從老得終
奚所復慕
寒署逾邁 亡旣異存 外姻晨來 良友宵奔 葬之中野 以安其魂 요요我行 蕭蕭墓門 奢恥宋臣 儉笑王孫 廓兮已滅 慨焉已遐 不封不樹 日月遂過 匪貴前譽 孰重後歌 人生寔難 死如之何 嗚呼哀哉

정묘년 음력 구월, 날씨는 차고 어둡고 긴 밤,쓸쓸하고 스산한 바람만 불어온다.

기러기는 어디론가 날아가며, 나뭇잎은 누렇게 시들어떨어지네.

나는 지금 나그네 길 잠시 머물던 곳을 떠나서 영원히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려 하네.

나와 정든 사람들은 애절하게 슬퍼하며, 마지막 떠나는 나를 위해 제사 지내는구나.

젯상에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맑은 술을 따라 올리지만
그러나 나는 이미 죽은 몸, 말 하려 해도 가슴만 답답할 뿐

아! 슬프구나.

넓고 넓은 대지와 끝없이 높은 하늘,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았거늘

만물 중에도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

가난한 운수에 매여서 한 그릇의 밥이나 국물도 배불리 못 먹고, 갈옷을 걸치고 추위를 지냈으며

계곡 흐르는 물 마시며 즐거웠고, 나뭇짐을 지고 내리며 노래했네.

어스름한사립문 안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들에 나가 일했네.

철 따라 김 매고 북돋우며 키우고 늘려나갔네.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글 읽고 한가하면 거문고를 타며 즐겼네.

겨울에는 따스한 햇살을 쬐고 여름에는 흐르는 물에 몸을 씻었네.

죽도록 일 해도 마음은 늘 한가로워, 즐거운 마음으로 분수에 맞게평생을 살았네.

백년도 못 되는 세월을사람들은 애지중지하며 사나니
재산 없음을 걱정하고, 하루라도 더 살려고 몸부림 치네.

살아서는 부귀영화 누리기를 바라고, 죽어서도 오래 기억되길 바라네.

하지만 나는 혼자만의 길을 걸었으니, 일찍이 그들과는 다르게 살았다오.

총애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았고, 속세의 진흙에 물들지 않았네.

세속과 어긋나 홀로 지조를 지키고, 허름한 초가에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오.

운명을 알아 인간세상을 탐함이 없으니나 이제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오.

수명은백년에 미쳤고 은둔을 사모하다 늙어 죽으니 어찌 더 바람이 있으리.

추위와 더위 교대로 지나가나 죽음은 삶과 다르네.

먼 친척들은 새벽에 오고 친한 친구들은 밤에 달려와서 들판 가운데 무덤을 만들어 넋을 편안하게 위로해 주리.

깊고도 먼 저승길 무덤 속은 너무도 적막하고 쓸쓸하여라.

송신(宋臣)의 사치 부끄럽고 왕손(王孫)의 검소함 또한 우스워라.

텅 빈 묘지에서 사라질것이니 멀리 떠나감을 탄식하리.

내 무덤엔 봉분도 나무도 없이 세월 속에서 자연에 묻히리라.

살아서도 명리를 귀히 여기지 않았거늘 죽은 후에 누가 칭송하며 기억하리?

인생살이 실로 어렵거늘 죽는다 한들 어떠하리.

아! 서글프고 애통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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