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이순

샌. 2012. 8. 20. 10:47

공자님은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말 그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어떤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칭찬이나 비난이 똑같이 들린다.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공자는 천하를 유랑하며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었다. 숱한 곤경을 당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60대는 그분이 한창 주유천하 하던 시기다. 68세 때 고향 곡부에 돌아와 교육 사업에 전념한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귀가 순해졌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공자님의 이순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다. 내 나이도 예순이다. 그러나 나는 귀가 순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예민해지니 어찌 된 일인가. 천성적으로 소음을 잘 견디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바깥 소음에 대해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짜증을 낸다. 한번 신경이 쓰이면 하는 일에 집중을 못 한다. 소인의 병통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화가 나고 섭섭해진다. 즉시 발끈 하는 경우가 흔하다. 같은 예순이지만 공자님과 이렇게 차이 날 수가 없다. 나이를 먹어도 밴댕이 소갈머리는 여전하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읽을 때 뿐인 걸 어떡하랴.

 

듣기 싫은 소리라도 순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게 지금의 내가 제일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생활 소음이 다른 사람 처지에서는 고맙고 활기차게 들릴 수 있다. 이곳 많은 주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인다. 편의시설이 바로 옆에 있으니 참 좋다고 여긴다. 내 입장만 벗어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을 비운다고 하는데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 꼬투리가 잡힌다. 묘한 일이다. 큰 일에서는 대범한 척 하는데, 작은 일에서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나 자신이 처량하다. 그게 대인과 소인의 차이일 것이다. 오늘도 '이순'을 백 번 쯤 외워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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