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샌. 2012. 8. 30. 16:59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매우 슬펐다. 공자가 하인에게 말했다.

"이 곡소리는 슬프기는 하지만 누군가 죽어 상을 당한 슬픔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나아가니 어떤 사람이 낫과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제 이름은 구오자(丘吾子)입니다."

"당신은 지금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슬프게 곡을 하고 있소?"

공자의 질문에 구오자가 대답했다.

"제게는 살아감에 있어 세 가지의 실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오늘에야 뒤늦게 깨달았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를 슬퍼하여 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다시 곡을 시작하는 구오자를 향해 물었다.

"세 가지의 실책이라니요. 내게 숨김없이 말해주시기를 바라오."

이에 구오자는 길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는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여 온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뒤에 돌아와보니 저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이것이 첫 번째 실책입니다. 장성한 뒤에는 제나라의 임금을 섬겼는데 임금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어진 선비들을 놓침으로써 신하로서의 절조를 완성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실책입니다. 또한 나는 평생 친구들을 돈후하게 사귀었으나 지금은 모두 떨어져나갔으니, 이것이 세 번째 실책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오자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님을 부양하려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구오자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며, 다시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입니다."

말을 마친 구오자는 강물 속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 이를 본 공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잘 기억해두어라. 이것은 교훈이 될 만한 일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내용이다. 인생을 잘못 산 사실을 자책하며 구오자는 몸을 던졌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는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정말 인생살이가 그런 것 같다. 근심과 걱정, 삐걱거리는 인간관계의 드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댄다. 마음은 늘 무언가로 들끓고 잔잔한 날이 별로 없다. 미움의 불이 요란하게 타오르기도 한다. 만약 내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지금 밖에서 세차게 부는 태풍의 바람보다 더 요란할 것이다.

 

영화처럼, 소설처럼 사는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삶이란 게 이렇게 누추한 줄은 몰랐다. 속절없이 세월은 이만큼 흘렀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요히 있으려 할수록 바깥 바람은 더 세차고, 마음을 비운다고 할수록 쓰레기는 더 쌓인다. 구오자의 후회가 내 일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나무가 바람 탓만 할 수 있을까? 모든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자란다. 부모님은 떠나가고 새 세대가 빈자리를 채운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를 하고 실패도 한다. 세상과 사람과의 불협화음이 그치지 않는다. 아무 이유도 없는 고난도 찾아온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견디는 수밖에는 없다. 대부분의 나무는 그렇게 버티며 산다.

 

그래도 어느 때는 산들바람에 실려오는 달콤한 향기가 있고, 바람이 전해주는 새의 노래가 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비관주의자는 과거에 매여있지만, 낙관주의자는 미래를 꿈꾼다. 공자는 구오자의 사례를 잘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으라고 말했다. 고국을 떠나 제나라로 가면서 공자 자신도 새롭게 마음 다짐을 했을 것이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 그래, 바람아, 불 테면 불어라. 나는 꿋꿋이 나의 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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