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샌. 2012. 11. 16. 10:21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맞을 때

등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컴퓨터를 열고 밤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적을 때

"아, 잘 잤다!"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릴 때

베란다에 새가 찾아와 노래할 때

달콤한 커피향이 코 끝을 간지릴 때

밥을 먹으며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 들 때

설거지를 하고 나서 깨끗해진 부엌을 바라볼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젊은이 앞에 서지 않을 때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

고독한 은자의 삶에 대한 글을 읽을 때

홀로 산길을 걸을 때

전화기 화면에 다정한 친구 이름이 찍혀 있을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미소가 떠오를 때

주변 소음이 사라지고 사방이 고요해질 때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바라볼 때

윗집 아이들의 뛰는 소리에 "크는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는 생각이 들 때

낙엽 위로 희미한 가을 양광이 비칠 때

나른하게 낮잠이 찾아올 때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의 뒷모습을 볼 때

좋은 시 한 편을 만나서 마음의 눈이 반짝할 때

책이 든 배낭을 매고 도서관에 찾아갈 때

산길에 드러난 나무뿌리를 피해서 걸어갈 때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을 바라볼 때

보도 가운데서 피어난 민들레를 보았을 때

급히 끼어드는 차에게 기쁜 마음으로 양보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먼저 인사할 때

손 잡고 걸어가는 유치원 아이들의 행렬을 볼 때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밖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걸 들을 때

바둑을 두면서 일부러 크게 이기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당신이 기뻐할까, 라는 마음이 일어날 때

친구의 긴 사설도 넉넉히 받아줄 때

라디오로 세상 사는 사연을 들으며 가슴이 찡해질 때

저녁 노을을 바라볼 때

하루를 마치고 편안히 잠자리에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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