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나무늘보

샌. 2012. 11. 13. 10:47

지금도 사람들은 말한다. 하는 일 없이 심심해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러면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 빈둥거리는 게 일이라고 변명한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세상에서 말하는 일이 없이도 나는 충분히 재미나다. 사람들은 각자 닮은 동물의 속성이 있다. 나는 동물 중에서도 나무늘보에 가깝다. 나무늘보는 게으름의 대명사다. 하루에 18시간을 잔다고 한다. 나도 하루 10시간을 자니 사람 나무늘보과가 맞다. 나무늘보가 나뭇가지 하나면 만족하듯 나도 작은 방과 책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무늘보 선생의 유유자적을 닮자면 아직 멀었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나무늘보에 더 가까워진다. 얼마나 답답한지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앞 동네에 00 있재? 대구에 살고 있는데 가끔 고향에 오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더라. 동네 사람들이 욕하는 걸 혼자만 모르는 바보다." "거기도 내하고 똑같은 사람이 있네요."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않으셨다. 나무늘보는 어머니에게도 고향 사람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심지어는 건방지다는 말도 듣는다.

 

세상에는 치타도 있고 나무늘보도 있다. 힘의 논리로만 따지면 나무늘보는 이미 멸종했어야 옳다. 그러나 생존에 보탬이 되는 아무 무기가 없는 나무늘보도 치타에 못잖게 잘 살아가고 있다. 나무늘보는 나무늘보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치타에게는 게으르게 보일지라도 그게 나무늘보의 일이다.

 

나무늘보는 은둔의 철인이다. 나무늘보는 속도의 시대를 온몸으로 저항한다. 나무늘보만큼 관계 맺기에 서투른 종족도 없을 것이다. 나무늘보의 졸리고 만사가 귀찮은 듯한 눈동자를 보면 연민이 들면서도 괜히 동류의식이 생긴다. 나무늘보의 살아가는 재미를 공유하고 싶다. 그러나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는 지고의 경지에 무릎을 꿇는다.

 

아무 눈에도 띄지 않는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의 소리 대신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만 들리는 곳. 누구에게서도 간섭받지 않고, 누구를 참견할 필요도 없는 곳. 유폐의 생활이 얼마나 깊어져야 사람이 그립고 일이 그리워지게 될까? 한 마리 고독한 나무늘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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