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샌. 2013. 1. 29. 09:54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 마디 못 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에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그래도, 터미널에 나가 표를 끊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섬, 가장 가까이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섬, 우리 가슴속에 있는 따스한 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면 한 번 더 용서가 되고, 한 번 더 희망을 가지게 되고, 한 번 더 손을 잡게 된다. 세파의 험한 물결을 헤치고 가면 그래도라는 빛나는 섬이 우리를 기다린다.

 

읽고 있는 책에서 좋은 글을 만났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산속 뇌우(雷雨) 치는 밤중에 번갯불은 번쩍이고 벼락 치는 소리 요란하고 비바람은 사나운데 죽은 이들과 머잖아 죽어 갈 이 지구 전체를 나는 생각한다. 죽을 운명을 타고난 모든 이에게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의 목소리는 이와 같이 말하려 한다. 형제들이여 우리 서로 가깝게 지내자. 우리를 떼어놓은 원인을 잊자. 우리들 전부의 고통과 비참함만을 생각하자. 적도 없고 악인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불쌍한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영속적인 유일한 행복은 우리들이 서로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지와 사랑, 오직 이것만이 삶의 앞뒤에 있는 두 개의 심연 사이에서 우리의 암흑을 비춰주는 유일한 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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