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한 수 위 / 복효근

샌. 2013. 1. 24. 08:16

어이, 할매 살라먼 사고 안 살라먼 자꼬 만지지 마씨요

- 때깔은 존디 기지가 영 허술해 보잉만

먼 소리다요 요 웃도리가 작년에 유행하던 기진디 우리 여편네도

요거 입고 서울 딸네도 가고 마을 회관에도 가고

벵원에도 가고 올여름 한려수도 관광도 댕겨왔소

물도 안 빠지고  늘어나도 않고

요거 보씨요 백화점에 납품하던 상푠디

요즘 겡기가 안 좋아 이월상품이라고 여그 나왔다요

헹편이 안 되먼 깎아달란 말이나 허제

안즉 해장 마수걸이도 못했는디

넘 장사판에 기지가 좋네 안 좋네 어쩌네

구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허들 말고

어서 가씨요

- 뭐 내가 돈이 없어 그러간디 나도 돈 있어라

요까이껏이 허면 얼마나 헌다고 괄시는 괄시요

팔처넌인디 산다먼 내 육처넌에 주지라 할매 차비는 빼드리께

뿌시럭거리며 괴춤에서 돈을 꺼내 할매 펴보이는 돈이

천원짜리 구지폐 넉 장이다

- 애개개 어쩐다요

됐소 고거라도 주고 가씨오 마수걸이라 밑지고 준 줄이나 아이씨요잉

못 이긴 척 배시시 웃는 할배와

또 수줍게 웃고 돌아서는 할매

둘 다 어금니가 하나도 없다

 

- 한 수 위 / 복효근

 

 

할배와 할매의 주고받는 흥정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전라도 사투리도 감칠맛이 난다. 할배는 정말 밑지고 팔았을까? 밑지고 준다는 말, 그대로 믿지는 않아도 기분은 좋다. 사람 사는 정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아내를 따라 가끔 이마트에 가는데 - 이마트를 이용 안 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 그 분위기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뭔가 거북하고 불편하다. 기계적이고 물적인 접촉만 있을 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없는 거다. 소통이 없는 화려한 풍요는 더욱 인간을 소외시킨다. 이맘때면 골목길을 돌아 다가오던 목소리, "찹쌀떡 메밀묵 사려~"가 들리는 듯하다.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도 있었다. 긴 겨울밤이 쓸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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