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10) - 오늘 다시 그리워지는 사람들

샌. 2013. 4. 18. 08:25

제10권에는 함석헌 선생이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해 쓴 글이 실려 있다. 선생이 제일 존경한 사람은 간디였는데, 그에 대해 쓴 글이 7편으로 제일 많다. 그다음이 남강 이승훈으로 5편이다. 나머지는 유영모, 우치무라 간조, 김교신, 장준하, 셸리가 등장한다.


함 선생은 남강의 전기도 썼다. 남강 선생은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으나 1907년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고 구국 운동에 뛰어든다. 도산의 연설이 끝나자 남강은 인파를 헤집고 연단으로 나아가 하단하는 도산의 손을 잡으며 당장 머리를 깎고 옳은 일을 위해 나서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때 남강은 43세, 도산은 30세였다.


도산의 평양 연설은 워낙 유명해 과연 어떤 내용인가 궁금했는데 함 선생이 쓴 '남강 전기' 안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1907년은 고종이 강제로 양위되고 서울에서는 상인들이 철시하고 곳곳에서 가두연설이 행해지는 등 무척 혼란한 때였다. 이완용의 집이 불타고 경찰서와 파출소가 파괴되기도 했다. 그때 평양 모란봉에서 청년 도산이 나타나 열변을 토했다. 도산의 연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 이렇게 흥분만 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남의 나라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을만 합니까, 아니합니까? 아마도 누구든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것입니다. 옛날 사람 말에도 '인필자모이후인모지(人必自侮而後人侮之)'라 하였습니다. 즉 사람이 제가 자기를 업수이여긴 후에야 다른 사람이 업수이여깁니다. 우리 국민이 모두 깨어서 자기의 덕을 닦고 행세를 바로 한다면 다른 사람이 업수이여길래야 업수이여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나쁩니다. 장차 우리 2천만의 피를 빨아 먹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의 4천 년 내려오던 귀한 나라는 그만 일본 사람이 손에 들어가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전해준 모든 재보(財寶)는 일본이 가져갈 것이요,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은 모두 일본의 남종과 여종으로 붙잡혀 갈 것입니다. (이때 도산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청중들이 일제히 통곡했다.)

여러분! 울기만 하면 무엇합니까. 우리가 못 생겨서 당하는 일이니까 누구를 원망합니까. 우리가 분한 생각을 하면 부지깽이라도 들고 나아가 일인 한 사람이라도 때려 죽이고 싶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서양문명을 받아가지고 새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세계의 대세를 알고 국민이 단결하여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4천만이라 하지만 뭉쳐서 하나가 되고, 우리는 2천만 동포가 모두 떨어져 2천만 각각 흩어져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4천만의 뭉친 힘을 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네를 막으려면 한데 뭉쳐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처럼 작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좀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계의 대세가 어떻게 되며 남들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빨리들 깹시다.

깨는 데는 우리도 배워야 하고 우리 후진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전날과 같이 상투를 짜고 앉아서 관을 쓰고, 공자왈 맹자왈 하여서는 안됩니다. '두가단(頭可斷)이언정 발부가단(髮不可斷)'이라든지 '수가단(手可斷)이언정 수불가단(袖不可斷)'이라 하여 백고도 치지 않는 머리와 넓은 소매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묵은 사상을 가지고는 도저히 개혁할 수 없습니다. 의병을 일으키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규율 없고 교양이 없는 군인은 아무 데도 쓸 수 없습니다. 물고기를 낚으려면 먼저 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를 바로잡으려면 먼저 우리도 깨어야 하고 우리 후진을 새 교육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일심정신으로 후배들을 가르칩시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구하는 첫째 방법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