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샌. 2013. 4. 24. 08:19

얼마 전에 어느 인기 강사가 구설수에 휘말린 일이 있었다. 자기계발서 같은 거 안 보고 인문학 서적을 본다는 젊은이에게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어디 갖다 쓸려고? 인문학 서적을 보고 느낀 정수를 자기계발서로 쓴 거야. 건방 떨지 말고 자기계발서도 봐." 결국 그는 논문 표절까지 논란이 되더니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잘 나가다가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에게 동정이 되는 바도 있지만, 인문학 서적의 정수를 모은 게 자기계발서라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인문학 서적과 자기계발서는 애초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권하고 싶다. 세상과 나를 지금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 그대로 노력과 열정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와는 전혀 다르다. 세상이 제시해 준 기준이 유일한 삶인 것처럼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이 책을 추천한다. 지은이의 삶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 삶도 가능하구나, 라는 인식은 우리를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란 나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트렌드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류를 이루는 가치에서 벗어나 내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 살아보는 것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덫에 대한 공격 선언이면서 '인간 권리 장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책을 관통하는 건 역시 아웃사이더 정신이다. <장자> 인용문도 여럿 나오는데 노자 장자 사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글 내용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지은이지만 왠지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말은 얼마나 멋진가.

 

"만약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다. 하고 싶지 않을 것을 지워 가다 보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드러나겠지. 피로에 젖도록 몰아세우며 얼마나 오래 '되어야 할 나'를 쫓아왔던가. 게으르거나 방종하지 않으면서 나답게 사는 길이 있을 테니 모든 해야 할 일들, 책임감, 의젓함을 잠깐 내려놓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있고 싶다. 그래도 괜찮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 공기처럼 가볍게, 햇살처럼 맑고 빛나게, 재밌고 신나게 오늘을 산다면 그게 바로 위대한 성공인 것을."

 

지은이는 우리가 되찾아야 할 권리를 30가지로 정리했다. 이 이름만 보아도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푹 쉴 권리 - 왜 우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걸까?

100점을 목표로 하지 않을 권리 -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무서운 까닭

필요할 때마다 멈출 권리 - 멈추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을 권리 - 갖고 싶은 것들과의 싸움

보험을 들지 않을 권리 - 내가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나잇값 하지 않을 권리 - 가끔은 당당하고 뻔뻔하게 요구할 것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을 권리 -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하루쯤 자유를 최대한 누릴 권리 -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리라

 

왜 자꾸만 화가 나는가?

 

'더 노력해라'라는 말을 거부할 권리 - 너무 열심히 산 게 문제였다

돈 없어서 기죽는 순간을 쿨하게 받아들일 권리 - 그래, 난 네가 부럽다!

사교적이지 않을 권리 - 내 마음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직장에 의리를 요구할 권리 - 제발 다른 회사에 가지 말라고 말해 줘

스마트하지 않을 권리 - 신제품을 사지 않을 자유

실수할 권리 - 왜 실수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는가

자발적으로 불편을 택할 권리 -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행복의 기술

끝까지 가 볼 권리 - 세상에 무익한 일이란 없다

 

'할 수 있다'는 다그침은 이제 그만

 

심심할 권리 - 한없이 지루했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 - 무엇을 사든 끝내 외로워질 것이다

고전에 짓눌리지 않을 권리 -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

딴지를 걸 권리 - 당신이 나와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게으르게 산책할 권리 - '어제의 나'와 흔쾌히 결별하는 시간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해 볼 권리 - 모두가 뜯어말리는 일일지라도

나만의 달력을 가질 권리 - 1월1일이 아니어도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그 행복한 발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무엇이든 진정 하고 싶어질 때까지

꿈꿀 권리 - 외롭고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해 주는 마법 같은 힘

생각하지 않을 권리 - 생각이 너무 많아 망치는 것들

낙담하지 않을 권리 -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들에 대처하는 법

알면서도 속아줄 권리 - 조금씩 손해 보는 삶이 더 나은 이유

배움의 때를 따지지 않을 권리 -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공부를 원 없이 하고 싶다

존엄의 마지막을 보낼 권리 - 나는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가

 

책에는 밑줄 긋고 싶은 구절들이 무척 많다. 어쩜 이렇게 생각이 기특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여러 번 감탄했다. 지은이는 이름이 정희재인데,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인도와 티베트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온전히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쓴 책이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외 여덟 권이 있다고 약력에 나와 있다. 지은이에 반해서 블로그까지 알아두었다. 책 내용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그가 부럽고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