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어떤 사마리아 사람

샌. 2013. 7. 22. 09:52

어느 날 예수를 떠보려고 한 율법학자가 찾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물었다. 예수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지 반문했다. 율법학자가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시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시오." 라고 적혀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는 올바로 말했다고 칭찬하며, 그대로 한다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려고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 물었다. 아마 다시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때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여 반쯤 죽여 놓고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제관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도 피해 지나갔습니다. 또 그와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피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던 중 그에게 와서 보고는 측은히 여겨,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그의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제 짐승에 태워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인숙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당신에게 갚아 드리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율법학자는 나그네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예수는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라고 말씀하셨다.

 

루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어떤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기독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경에서도 유명한 구절이다. 이 비유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예수의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라는 명령이야말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이 명심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강도 맞은 사람을 제관이나 레위인은 못 본 척 피해서 지나갔다는 것,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이 측은히 여기고 돌보아 주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예수의 유머 뒤에 숨어 있는 신랄한 비판 의식을 느낄 수 있다. 또,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강도를 당한 사람을 누구로 볼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그에 따라 신앙의 방향이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앙에는 몇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계는 일신의 만족이나 사후 구원이 목적인 신앙이다. 강도를 맞은 이웃은 관심 밖이고, 교회는 천국행 티켓을 딴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모여 지낸다. 기독교인의 이기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한국 교회의 다수가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가서 당신도 그렇게 행하시오." 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이다. 이 세상의 아픈 곳을 함께 아파하고 동참한다. 이웃이 되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맞은 사람을 도와주고 길을 가다가 또 다른 강도 맞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역시 똑 같이 도와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또 다른 만났다면? 강도 맞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사마리아 사람은 응당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세상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신앙의 세 번째 단계는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고 또다른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닐까?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시라고 우리가 기도하는 본 뜻이 아닐까?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의식은 나에게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세계로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그걸 불온시해서는 기독교의 미래는 없다. 한국 기독교의 불행은 신자들을 교회라는 좁은 우리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데 있다. 그런 제관이나 레위인 눈에는 길 위에 쓰러진 사람이 보일 리가 없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 말씀은 더 계속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너희들이 앞장서서 강도 맞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 내 제자라면 가서 그렇게 행하라!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십시오  (0) 2013.08.10
축생의 시대  (0) 2013.08.03
착하게 살자  (0) 2013.07.17
은퇴 피로증  (0) 2013.07.08
정란의 목각  (0) 2013.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