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은퇴 피로증

샌. 2013. 7. 8. 12:40

무슨 일이든 2, 3년이 지나면 고비를 맞는 것 같다. 사랑에만 유효기간이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신선하고 황홀한 것도 일상이 되어 버리면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의 뇌는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흥분 호르몬 효과는 길어야 3년이다.

 

은퇴한지 2년이 훌쩍 넘었다. 나의 은퇴 허니문 기간도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 짜증이 자꾸 늘어나는 게 그 증상이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걷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전만큼 즐겁지가 않다. 나는 여기에 '은퇴 피로증'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렇게 되니 최근에는 아내와 마찰도 잦다. 서로 사소한 것으로 반응하고 부딪힌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게 이젠 눈에 거슬린다. 아내의 신경도 날카로워지고 악순환을 일으킨다. 이러니 남자는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내가 변한 건 알지만 그런 내 마음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은퇴 피로증은 뇌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놀거리나 일거리를 찾으면 해소된다는 건 잘 안다. 삶의 지루함을 잊게 할 마취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방법을 쓰기는 싫다. 도리어 정면으로 부딪쳐 보고 싶다. 내 단순한 삶의 원칙을 지키면서 권태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시기도 내 삶의 일부분이다. 늘 좋은 것만 바랄 수는 없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이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았다면 응당 권태와 고독도 견뎌내야 한다. 인생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니 별로 걱정하진 않는다. 다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건 조심스럽다. 내 마음속 쓰레기를 밖으로 마구 배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이 인격 수양을 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마디를 만들면서 대나무는 위로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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