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일장춘몽

샌. 2013. 6. 11. 09:14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어렸을 때 집에 유성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들고 나는 태엽을 돌리며 유성기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노래도 그중의 하나다. 이제는 그 하얗던 할머니들도, 유성기도, 마당의 감나무도 사라지고 없다.

 

요사이 내 입에서도 무심결에 이 노래가 중얼거려진다. 그러면 옛날의 그 호롱불이 희미하던 방 풍경이 떠오른다. 본 노래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던, 북한 사람의 음성처럼 간드러지던 유성기 소리도 들린다.

 

인생 일장춘몽인데, 애면글면 헛된 마음을 쓰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에 있나 싶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던가.

 

에라, 이기려 하지 말고 져 주자. 내 좁은 세계에 갇히니까 자꾸 사람과 부딪히고 세상과 부딪힌다. 고개 숙이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있지도 않은 걸 붙잡고, 되지도 않는 걸 움켜쥐려 한다.

 

아서라, 무지(無知)와 어리석음이 그만하면 됐구나.

 

인생 백 년을 살더라도 한순간의 꿈이란 걸 체화한 게 깨달음이 아닐까. 먹물의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말이다. 그러면 달라지지 않을까? 나만 고집하지 않고, 싫은 것도 받아들이며, 좀 넉넉히 살 수 있지 않을까?

 

스승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다.

 

"깨달음이란 이해이며 그 이해는 사유에서 온다. 성인이 말씀하신 이 세계의 이치를 거듭 사유하여 너를 불행하게 하던 오해를 풀도록 하라. 사유를 통하여 그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너의 행복에 도움이 되도록 인식 전환을 하라. 그것이 깨달음이다. 연기이므로 네가 공(空)하고 이 세상이 공(空)하다는 것이 이해되는가? 이해되었으면 그것을 거듭 사유하며 그 이치가 너에게 어떤 느낌으로 스며드는가를 보아라. 해탈도 자유도 그것이 문자로 있는 한 메마른 관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네 몸의 느낌으로 느껴올 때, 그것이 해탈감, 자유감이 될 때 비로소 그 문자는 활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이 세계는 뿌리에서부터 공동체인즉 너는 얼마만큼의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공동체를 위해 얼마큼 너를 바치려느냐. 이기심은 DNA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해부족, 학습부족에서 생긴 것이다. 한번 이해했으면 그 이해를 반복하며 학습하는 것, 그것이 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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