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샌. 2013. 5. 10. 10:07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내 삶의 에너지는 걸을 때 나온다. 길은 호젓한 산길이 좋다. 그리고 동행 없이 홀로여야 한다. 이 세 가지 박자가 맞으면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듯 분출한다.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산길에는 사람 대신 풀과 나무 친구가 있다. 또한 꽃 친구도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는 말 없어도 말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조용한 산책을 위해서는 산은 낮으며 부드럽고, 길은 익숙해야 좋다. 그래서 집 뒷산이야말로 제격이다.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길이다. 그동안에 한두 사람을 마주치는 정도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뒷산을 알고 난 뒤에는 멀리 떠나는 산행은 흥미를 잃었다.


걸을 때는 어떤 규칙이나 구속도 없다. 몸을 위해 약간 숨이 찰 정도로 속보를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발이 내딛어지는 대로 걷는다. 야생화를 살피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누구 말 같이 씨 뿌리는 속도로 걷게도 된다. 걷다 보면 내 몸과 마음에 맞는 리듬이 있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 때 정신의 엑스터시를 맛본다. 목적 없는 그냥 걷기가 주는 행복이다.


걷기는 치유다. 걷다 보면 생채기가 아물고 새 살이 보송보송 돋아나는 것 같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마음의 문도 활짝 열린다. 밴댕이 속같이 좁았던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넉넉해지는 것도 이때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때 내가 나를 껴안을 수 있다. 그리되면 세상이 반짝반짝 빛난다.


나는 고독을 사랑한다. 혼자 걸으면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아 좋다. 집에 있는 것과는 달리 산길은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킨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눈 녹듯 사라진다. 텅 비는 것이 왜 충만이 되는지 산길은 가르쳐준다. 내가 진정 나다울 수 있는 때다. 행복은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된다고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내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 찾아오는 선물인 것 같다.


산길을 걸을 때 나는 몇 센티미터는 더 키가 커지는 것 같다. 자존감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나는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단독자임을 명료하게 의식한다. 바람이, 하늘이, 숲이 그렇게 내 영혼에 속삭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산책이 주는 자연의 위무는 무척이나 감미롭다.


산책 하면 칸트가 떠오른다. 칸트는 평생을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곤 매일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산책했다. 마을 사람들은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고등학교 다닐때 윤리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아마 칸트의 위대한 사상은 매일의 산책 중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루소 역시 자신을 '고독한 산보자'라고 칭했다.


나 역시 홀로 산길에 들 때 희열을 느낀다. 그것 이상의 행복이 없다. 전에는 산티아고나 제주 올레, 또는 전국 도보 순례 같은 큰 걷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주변의 사소한 걷기가 더 귀하다. 늘 만나는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때가 이국의 신기한 풍물보다 훨씬 더 감동을 준다. 오늘 누가 행복에 대해 묻는다면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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