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임류의 자족

샌. 2013. 4. 29. 16:53

따뜻한 봄날에 백살이 다 된 임류라는 노인이 겨울에 입던 갖옷을 그대로 걸치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이삭을 밭이랑에서 주우며 노래를 부르다 걸어가다 하였다. 이것을 위나라로 가다가 벌판을 바라보던 공자가 보고는 뒤따라 오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노인은 말을 걸어 볼 만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가서 말을 해 보겠느냐?"

말 잘 하는 자공이 자청하여 밭 언덕을 가로질러 노인에게 가서 측은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렇게 이삭을 주우며 노래를 부르시는데, 선생께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전혀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임류는 들은 척도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불렀다. 자공 또한 노인이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말하였다

"내게 후회할 것이 있다 생각되시오?"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젊었을 때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때를 다투어 가며 살지 않으시다가 이제 늙고 처자식도 없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가엾은 처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즐거워 이삭을 주워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인데도 노래를 부르시니, 지나가던 길손이지만 안타까워 묻는 말입니다."

임류가 말하였다.

"내가 즐거워 하는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와 같은 즐거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즐거움을 즐거움인 줄 모르고 도리어 근심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젊어서는 부지런히 일을 하지 않고, 때를 다투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내 나이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늙어서 처자식이 없고 죽을 날이 가까워 오기 때문에 이렇게 즐거워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공이 말하였다.

"오래 사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생께서는 어째서 도리어 죽음을 즐거워 하십니까?"

임류가 말하였다.

"사람이 죽고사는 것은 생명의 물결이 한 번 왔다 다시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이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저 때 저곳에서 살지 않는다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다만 죽고 사는 현상이 서로 같지 않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내가 또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분주히 삶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내가 지금 죽는 것이 옛날에 살았던 것과 못하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자공은 임류의 하는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잘 몰라 돌아가서 공자에게 말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그 노인과 같이 얘기할 만한 사람으로 짐작하였더니 과연 그렇구나. 그러나 그 노인은 도를 얻기는 얻었지만 아직 지극하지는 못한 곳이 있구나."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임류(林類)는 숨어 있는 은자였다. 고수는 한 눈에 고수를 알아본다고, 이삭을 줍고 가는 거지꼴의 임류가 공자 눈에 띄었다. 공자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려고 자공을 보낸다.

 

자공이 볼 때 몸은 늙고 처자식도 가진 재산도 없고, 그래서 남의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연명하는 임류는 실패한 인생이다. 그래도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걸 보니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객관적 처지는 전혀 아니올시오다. 그러나 임류는 세상에서 말하는 불행을 전혀 불행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돈이 없고 처자식이 없으니 집착을 하지 않아 좋고, 늙고 죽을 날이 가까워오니 오히려 즐겁다. 노장사상이 체화된 중국의 은자들은 세상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삶 자체를 즐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와 같은 즐거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즐거움을 즐거움인 줄 모르고 도리어 근심걱정을 하고 있다'[人皆有之 而反以爲憂]라는 임류의 말은 도가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도가에서 바라보는 죽음의 관점도 나와 있다. 나고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사람들이 삶에만 집착하고 죽음을 기피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알 수 없건만 그걸 두려워하는 건 미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보다 못하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지상에서의 이별은 또 다른 만남에 대한 약속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은둔자들은 제멋에 겨워 자족하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 반대편에는 세파에 영합해서 안락을 구하며 살아가는 무리가 있다. 인생이란 묘한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면 할수록 근심걱정 또한 그만큼 늘어난다. 임류는 세상의 것을 포기할 때 찾아오는 삶의 기쁨을 분명 맛보았으리라.

 

자공에게서 전해 들은 공자의 평가가 재미있다. 임류가 도를 얻기는 하였지만 아직 지극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일까? 자족의 도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머문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를 깨달았으면 현실 세계로 내려와 대중을 깨우쳐주어야 옳다. 빛을 감추어 두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것이 지극함이 모자란다고 공자가 말 한 뜻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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