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고슴도치의 가시

샌. 2013. 11. 12. 10:15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이와 같이 그들은 두 악(惡) 사이를 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했다."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인데, 인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사교의 욕구는 서로를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면 불쾌감과 반발심이 일어 다시 떨어진다.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인간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정중함과 예의다. 일종의 중용인 셈이다. 따뜻해지려는 욕망은 완전히 충족되지 않겠지만, 덕분에 가시에 찔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쇼펜하우어다운 점은 그다음의 설명이다. 내적인 따뜻함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통과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글에서는 고독에 대한 찬양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자신도 프랑크푸르트에서 홀로 살면서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사교성이란 사람들이 서로의 정신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서, 스스로 정신적 온기를 지닌 사람은 굳이 무리를 지어 모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비사교성이야 말로 위대한 사람의 특징이다.

 

고슴도치의 가시 비유는 인간 존재의 한계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로는 살 수 없다. 서로 어울리고 뭉치고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한다. 상대의 온기를 느끼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릴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의 아픔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를 얻고자 하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한다.

 

가까운 예로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퇴직하고 나니 집에서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같이 공유하는 시간도 좋지만, 각자의 시간도 마땅히 필요하다. 지내다 보니 너무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고, 너무 멀어졌다 싶으면 다시 가까워진다.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도 않고, 그러면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간격, 그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부부생활의 노하우인 것 같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가까워지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멀리 떨어지라고 한다. 춥더라도 고통이 적은 삶을 택하라는 것이다. 추위는 정신의 내적 풍요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런 자격을 갖춘 사람은 극소수다. 결핍되고 공허한 우리들 다수는 상대의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에게 실망하면서도 다시 사람에게 접근한다. 가시에 찔리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당신을 끌어안으려 한다. 이것이 가련한 우리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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