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무사시의 작약

샌. 2013. 9. 24. 11:12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에게 이런 일화가 전한다. 무사시가 당시의 최고 검객이었던 세키슈샤이에게 진검승부를 신청했다. 그러나 세키슈샤이는 감기 때문에 도전을 못 받아주는 대신 작약꽃을 칼로 베어 무사시에게 전했다. 꽃이 베어진 단면을 보고 무사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나는 세키슈샤이 명인에게 이길 수 없다. 그야말로 내가 본 중에 최고의 검객이다."

그리고는 세키슈샤이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예를 갖춘 뒤 물러났다.

 

이 정도 되면 검술은 예술의 경지에 든 것이다. 고수는 고수가 알아본다든가, 꽃이 베어진 단면을 보고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무사시도 고수다. 그는 검을 통해 선(禪)의 경지에 이르렀다. 무사시는 '칼로 싸우지만 마음으로 이긴다'라는 말도 남겼다.

 

<장자>에 나오는 백정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소를 잡는 데도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다. 문혜왕이 백정의 솜씨를 보고 "아, 훌륭하구나. 재주가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를 수가 있는가?"라고 감탄했다. 그러자 백정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써 재주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백정의 설명을 듣고 문혜왕은 말했다. "훌륭한지고!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백정의 칼 역시 무사시의 칼과 다르지 않다.

 

무슨 분야든지 수준이 일정 단계에 오르면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는 것 같다. 바둑, 글씨, 스포츠 등 어느 길이든 마찬가지다. 이창호가 쓴 책에 보면 바둑을 둘 때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한다고 한다. 바둑돌과 자신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란다. 야구 선수도 기량이 정상급에 이르면 공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손에 전해지는 느낌만으로 홈런임을 직감한다. 날아가는 궤적은 그뒤에 확인할 뿐이다. 몸과 정신, 자아와 물체의 구별은 사라진다.

 

무사시는 작약꽃에 남은 흔적을 보고 세키슈샤이가 이른 경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마음이 심자통(心自通)에 이르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수에게 승부는 별 의미가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지극하게 되면 이렇듯 도에 가까워지게 된다. 일가견을 지니는 경계를 넘어선 자리다. 백수에게도 도의 길이 없으란 법이 없다. 문자 그대로의 무위(無爲)적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백수는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 없음이 도리어 걸림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백수의 도(道)'가 제일 어려운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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