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별사 / 김사인

샌. 2014. 1. 1. 13:06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라고 하면 좀 낫지요마는

 

- 별사(別辭) / 김사인

 

 

신년시라고 꼭 희망과 꿈을 노래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보신각 앞에 모여 환호하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부푼 가슴 펄럭이며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만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니겠지요. 사실 그래요. 달라지는 건 없어요. 새해가 되어도 비 오고 바람 불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찾아오겠지요. 슬픈 시를 신년 벽두에 놓았다고 날 나무라진 말아요. '다 공부지요' 라는 말이 참 좋네요. 당신도 그러길 바래요. 하늘 마음과 통하면 감내치 못할 일이 무에 있겠어요. 어쩌면 따스한 손이 내려와 착하다고 당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겠지요. 그래요, 다 공부지요. 공부 아닌 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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