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샌. 2014. 3. 25. 09:37

딸네 집에 갔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펴고는 단숨에 읽었다. 돋보기를 가져가지 않아 침침한 눈이었지만 한 번 빠져드니 헤어나지 못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돈과 외모지상주의에 맹종하는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 시스템을 고발한다.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를 지배하는 전략이 부와 아름다움에 대한 신화를 부풀리는 것이다. 돈과 예쁜 여자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대중은 부나비처럼 부와 아름다움을 향한 경쟁 대열에 뛰어든다. 소수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이다. 가혹한 세상에 들러리를 선 시녀의 처지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여자는 놀림을 받고, 소외되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한다. 그런 여자에게 한 남자가 인간적 친절을 베풀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으로 발전한다.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셋 나오는데 공통점은 모두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처를 가진 사람 중에서 일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서로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당연해 보이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서 회의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시대에서 예쁜 여자에 대한 찬미는 점점 도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아나운서든 운동선수든 예쁘고 몸매가 받쳐줘야 주목을 받는다. 저속하고 속물적인 세태다. 가끔 보는 '개콘'에서도 못생긴 여자는 꼭 비하의 대상으로 나온다. 웃음거리라고 하지만 보기에 너무 불편하다. 너나없이 내면 세계를 가꾸기보다는 외모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한국은 성형왕국이라 불린다. 못 생기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 야만의 세계다.

 

연애소설 형식을 취하면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부조리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드러내 보인다. 주인공은 '세상은 이상하다'고 끊임없이 반복한다. 주인공이 한 낙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식을 왜 배우는 걸까. 이를테면 f(x+y)=f(x)+f(y)를 가르치면서도 왜, 정작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왕조의 쇠퇴와 몰락을 줄줄이 외게 하면서도 왜, 이별을 겪거나 극복한 개인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가. 지층의 구조를 놓고 수십 조항의 문제를 제출하면서도 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 것인가. 아메바와 플랑크톤의 세포 구조를 떠들면서도 왜, 고통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는가. 남을 이기하고 말하기 전에 왜, 자신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영어나 불어의 문법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정작 모두가 듣고 살아야 할 말의 예절에는 소홀한 것인가. 왜 협력을 가르치지 않고 경쟁을 가르치는가. 말하자면 왜, 비교평가를 하는 것이며 너는 몇 점이냐 너는 몇 등이냐를 외치게 하는 것인가. 왜, 너는 무엇을 입었고 너는 어디를 나왔고 너는 어디를 다니고 있는가를 그토록 추궁하는가.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왜 그토록 못을 박는가. 그토록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것은 왜이며, 그 조항들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그냥 모두를 내버려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냥 모두가 그 뒤를 쫓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러워할수록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누구이며, 보이지 않는 선두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부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멜른의 피리를 따라가는 쥐새끼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현대의 미신인 부와 아름다움에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믿으며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작가가 볼 때 이 미친 세상을 유지하는 동력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의 무지몽매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길 바란다. 스스로 복종함으로 가장 쉽게 우리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심리에는 상층 계급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가 공존한다. 끊임없이 모방하고 따라가려 하는 것이 유행과 사치로 나타난다. 명품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집착도 그렇다. 지배자는 계속 하멜른의 피리를 불고, 눈먼 대중은 허영심의 경주를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사악한 속셈을 모르는 건 어리석은 다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이런 관점에서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 의식이 좋았다. 세상을 바꾸는 건 우리의 상상력과 사랑이다. 시류에 휩쓸리는 지푸라기 같은 인간이 되지 말자. 부끄러워하거나 부러워하지 말고, 내면의 등불에 불을 밝히자. 차가운 이웃의 가슴에 온기를 나누어주자.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시시한 것으로 바꾸어 나가자.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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