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영장산길을 걷다

샌. 2014. 3. 26. 20:12

 

홀로 산길을 걷는 것을 나는 '풍요로운 고독'이라고 이름 붙인다. 외롭거나 허기진 고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떠난 대신 구름 친구, 바람 친구, 나무 친구, 꽃 친구, 새 친구가 나를 반겨준다. 유쾌한 벗들로 둘러싸인다. 평일에 산길을 걸으면 몇 시간 동안 한두 사람 스치는 게 고작이다. 그 여백이 무한 즐겁다.

 

정신 수양으로 한적한 산길 걷기만큼 좋은 건 없다. 때를 벗기려 목욕탕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라는 퇴계의 시에 보면,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나온다. 산길을 걷고 나면 좋은 책 한 권 읽은 것 같은 정신의 청량함을 맛본다.

 

산에 들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유는 욕심이 비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땀이 밸 듯 걷다 보면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훌훌 날아가 버린다. 저 아래 세계에서 아등바등하던 것들이 먼지처럼 하찮아 보이는 것도 이때다. 책상 앞에서는 얻기 어려운 깨우침을 산길은 가르쳐 준다. 산에서 내려가면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도 정신은 그만큼 성장하여 있을 것이다.

 

 

집 뒤로 검단지맥이 지나간다. 검단지맥(黔丹枝脈)은 한강에서부터 남한산성을 지나 불곡산까지 이어지는 40km가 넘는 긴 산줄기다. 오늘은 집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서 고불산으로 오른다. 고불산은 검단지맥의 중간쯤에 있는 산이다. 고불산에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영장산으로 향한다. 햇볕 따스하고, 산길 폭신하다.

 

 

 

완연한 봄이다. 숲은 생명이 깨어나는 소리로 수런수런하다. 그렇게 느껴질 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니 소란하지 않다. 아주 조용하다. 인간 세상의 아귀다툼은 흐릿하게 멀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 다 부질없는 짓이어라. 이틀 전 힘 없이 돌아서는 그이한테 외쳤다. "케세라세라!" 그이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산행 시간; 4시간(11:00~15:00)

* 산행 거리; 10km

* 산행 경로; 삼동 - 청명사 - 고불산 - 영장산 - 맹산자연학습장 - 이매역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경(32)  (0) 2014.04.03
아내와 비봉에 오르다  (0) 2014.03.31
풍경(31)  (0) 2014.03.24
베란다의 봄  (0) 2014.03.21
봄이 오는 뒷산  (0)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