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인사

샌. 2015. 1. 13. 10:56

선생을 오래 한 결과 나쁜 버릇이 몸에 배었다. 학생들한테 인사를 받기만 했지 내가 먼저 한 적은 없었으니 동네에서도 의례 앞서 인사할 줄을 모른다. 상대 인사에 마지못한 듯 대응해 주는 정도다. 표현은 안 하지만 뭐 저렇게 뚝뚝한 사람이 있느냐고 속으로는 생각할지 모른다. 고쳐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된다.

 

특히 뒷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꼭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여기서도 나는 받는 편이지 먼저 하지는 않는다. 어떤 때는 인사를 걸어오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냥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도 서로 무심하게 살아온 삶의 습관 때문인 것 같다. 뒷산을 찾는 사람은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산 아래 같은 동네에 산다. 그러니 아무래도 친근감이 더할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오면 달라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엘리베이터에서 보는 사람이라면 제일 가까운 이웃일 텐데 친밀함보다는 경계심이 우선하는 것 같다. 남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심리가 있는지 모른다. 이런 도시의 익명성이 편하다는 사람이 많다. 가벼운 인사 나누기도 어색한 건 산에서 만날 때와는 영 딴판이다.

 

어렸을 때는 마을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꼭 인사를 올려야 했다. "진지 드셨니껴?"가 그때의 인사말이었다. 얼마나 못 먹고 살았으면 밥 먹은 걸 확인하는 게 인사로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당시의 우리만큼 가난하게 살고 있는 네팔의 인사말은 "나마스떼"다. '당신 안에 있는 신성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다. 같은 인사말인데도 품격에서 차이가 난다.

 

사람을 반긴다는 느낌만큼 좋은 것도 없다. 서양 사람 얼굴에서는 그런 환대의 인상을 받는다. 반면에 우리는 표정이 너무 굳어 있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은 삶의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압축 성장을 하면서 너무 심하게 달려온 결과다. 그러나 수십 년간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펴는 데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내 경우가 꼭 그렇다. 마음과 얼굴이 따로 논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괜히 굳은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 앞에서 잰 체하고 위엄을 부린 표정이 쉽사리 변할 리 없다. 관성은 무섭다.

 

기본적인 것을 이 나이에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쉽고 간단해 보이는 것이 사실은 실천하기가 힘들다. 세상을 바꾸려 할 게 아니라 내 딱딱한 마음과 태도부터 개조하는 게 먼저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고담준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웃는 낯으로 인사 연습을 하는 유치원생이 되어 보자. 이것저것 계산하지 말고 쓸데없는 자존심도 버리자. 쉬워 보이면서도 매우 어려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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