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샌. 2015. 7. 11. 23:14

박이문 선생의 글은 가슴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노년에도 식지 않는 진리를 향한 열정도 부럽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 내 소년과 청춘 시절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 시절만큼은 선생의 경험과 고민에서 공유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한다. 선생은 평생을 진리 탐구의 길로 나갔지만 나는 반짝하고 빛났다가 사그라졌다.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은 선생의 자전적인 글을 모은 책이다. 진리가 무엇이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평생을 연구해 온 선생의 결론은 무엇일까. 선생은 말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만이 아니라 우주를 포함한 모든 것이 한결같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의미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당신을 허무주의자로 부르는 것 같다. 동시에 선생은 시와 철학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본다. 선생은 철학자이기 이전에 시인이고 예술가다.

 

선생의 글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소년 시절부터 여든이 넘은 나이까지 식을 줄 모르는 지적 호기심이다. 시인,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불문학 전공을 택했다가, 프랑스 유학 중에 방대한 학문의 세계를 접하고 철학의 길로 들어섰다. 인생의 고뇌와 실존적 문제에 평생을 건 것이다. 모든 존재의 궁극적 의미의 발견이 선생의 과제였다. 그런 지적 삶을 선생은 살고 있다.

 

이 책에 선생의 생각을 나타내는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철학자도 그대로 추종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철학자들로부터 무한한 지적 통찰력과 지혜를 배운다. 위대한 철학자, 작가, 혁명가는 물론 나를 가르쳐 주신 시골 소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모든 스승들에 이르기까지, 나와 가까웠던 모든 친지들, 수많은 책들, 세계, 자연, 그리고 나의 모든 경험이 나의 철학적 교사이자 교과서였다.

 

나는 어떤 특정한 종교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를 누구 못지 않게 종교적인 사람으로 자처한다. 나는 물리적 우주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신뢰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우주야말로 가장 신비스러운 것으로 본다. 나는 내세를 믿지 않고 누구나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바로 이 세상이 내세이며, 바로 이 삶이 영원한 삶이라고 믿는다. 나는 삶의 궁극적 허무를 의식한다. 그러나 이 허무감을 달랠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자연, 지구, 우주의 주인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 지구, 우주의 운명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인간보다 개나 새에 더 정이 간다. 그리고 인간이 물리적으로는 무한히 광대한 우주의 무한히 작은 일부분임을 안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정신적으로 우주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언어를 떠난 인식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은 역시 인간의 인식과 독립해 존재하는, 개념화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인식이지 인간의 상상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사실, 현상, 세계, 우주 등등은 언어에 의한 인간의 고안품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 현상, 세계, 우주는 단순히 인간에 의한 언어적 발명 이상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인식론적 관념론자이며 존재론적 유명론자이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버클리적인 관념론을 배척하고, 존재론적 개념주의를 거부한다.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 궁극적으로 어떤 삶이 옳고 그릇된 삶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선과 악, 옳고 그릇된 삶은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에 달려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그냥 편함으로서의 혹은 쾌락으로서의 행복을 멸시한다.

 

나는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꾸준한 개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역사의 변증법에 따른 진보가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결단에 따라 역사는 진보해 왔고 앞으로도 진보할 수 있으며, 진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나는 독재적 사회주의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물질적 가치만을 중요시하는 추악한 자본주의에 구역질을 느낀다. 나는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가 그곳 민중들을 위해서 다행스러운 역사적 사건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지향하던 유토피아적 이상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소수 세련된 지배 귀족에 맞서 다수 소박한 민중의 편에 선다. 그러나 민중은 정말로 귀족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문화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의 천박한 쾌락주의적 대중문화를 혐오한다. 나는 약바른 자를 경멸한다. 그러나 위선자는 정말 참을 수 없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철저하고 싶다.

 

나는 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이성의 존재를 확신한다. 나는 이성이 판단의 절대적 잣대라고는 믿지 않고, 이성을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빛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성은 역시 사유의 잣대이며, 이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빛은 아무데서도 찾아낼 수 없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이성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이 또한 이성을 잃을 때가 흔히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철학이 이성적 활동의 가장 대표적 표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성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다소나마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철학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세계의 어느 것도 바꾸어 놓을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철학은 세계를 밝히는 빛이다. 나는 철학의 실용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이 세계의 창조자라는 점에서 철학은 가장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철학적 사유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 세계 속에 갇혀있음을 안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를 하는 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가 태어나고 생존하는 사회, 세계, 자연을 초월하고 우주는 그러한 철학적 사유 속에 들어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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