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샌. 2015. 8. 14. 09:13

어느 분야나 고수의 경지에 오르면 비범한 무엇이 있다. 한 길을 깊이 판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다. 외길을 걸어가는 벽(癖)이 있는 자만의 특성이다. 바둑의 고수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조훈현 씨가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냈다. 고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사는지 궁금했다.

 

결국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사 조훈현에게 제일 쓰라린 경험은 자신이 직접 기른 제자 이창호에게 정상을 빼앗기고 무관으로 전락한 때였을 것이다. 책에서도 고백하듯이 이창호가 그렇게 빨리 성장하리라고는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바닥에서 조훈현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담담해졌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바둑판이 싸움판이 아니라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오랜 기간 승부의 세계를 살아온 사람의 체험담이다. 일반인은 바둑을 오락으로 즐기지만, 프로기사에게 바둑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만 한 노력과 고통이 따랐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승부사답게 일관되게 강조하는 건 기개와 자신감이다. 물론 깊은 생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바둑 고수의 인생이나 일반인의 인생이나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산다는 것 자체가 시련이고 고통이다. 이걸 어떻게 이겨내는가는 고독과 사색을 통한 자신만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지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책에 소개된 일본 기사 세고에와 후지사와에게서 고수의 품격이 느껴졌다. 세고에는 조훈현의 스승이었다. 조훈현은 세고에의 집에서 9년간 지내며 바둑과 함께 인품을 배웠다. 스승도 제자를 무척 사랑해서 조훈현이 귀국하자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후지사와는 자유분방한 정신을 지닌 바둑 기인이었다. 멋과 파격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둘 다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구축하신 분들이다.

 

책에서 일말의 아쉬운 점도 있다.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 어쩐지 남이 대신 적은 듯한 냄새가 났다. 이런 건 내용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리고 조훈현만의 색깔을 읽지 못해 서운했다. 조훈현에게서 너무 파격적인 멋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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