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고향집 나팔꽃

샌. 2015. 9. 4. 16:52

 

고향집 울타리를 따라가며 나팔꽃이 피어 있다. 돌담을 지나고, 기와 덮개를 지나고, 버려진 슬레이트를 지난다. 소년 시절의 꽃으로 기억나는 건 화단의 붉은 채송화, 그리고 가꾸지 않아도 덩굴을 뻗으며 자라던 나팔꽃이다. 지금 이 꽃은 50년 전 그 나팔꽃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나팔꽃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낮이면 꽃잎을 닫아버리는 모양에서 사람 사이의 사랑을 연상했는지 모른다. 삶도 다르지 않다. 결국은 '덧없음'으로 귀결되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닐까. 나팔꽃에서는 힘찬 팡파르 대신 애조 서린 가락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한쪽 시력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 나팔꽃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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