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염치

샌. 2015. 9. 21. 18:43

염치 없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상한다. 내 경우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사람 때문에 신경 쓰이는 때가 많다. 바깥 경치를 구경하거나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중에 옆에서 들리는 소음은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다. 긴급한 연락도 아니고 잡담 수준의 통화를 옆 사람은 아랑곳없이 계속하는 사람이 꼭 있다. 남의 사생활 얘기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건 고역이다.

 

이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태도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한다는 걸 의식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다. 자기만 아는 이런 사람을 보고 염치 없다고 말한다. 공공장소에서는 이런 염치 없는 자가 항상 있다. 어찌 보면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큰 염치가 없어지는 것도 작은 염치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본에 다녀온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은 일본인이 휴대폰을 받더니 다음 역에서 내리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밖으로 나가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승강구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전화를 받는 걸 보고 소음을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자리를 피한 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인은 타인을 의식하며 산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염치(廉恥)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나와 있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염치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류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이 걱정이다. 너무 오냐오냐하며 기르다 보니 버릇이 없다 못해 뻔뻔해지고 있다. 보고 배운 대로겠지만 어른들 뺨친다. 수줍어하며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보는 것도 드문 일이 되었다.

 

염치의 작은 말은 얌치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여기서 얌체가 나온 것 같다. 상대가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게 얌체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얌체가 있기 마련이다. 소수라면 눈감아줘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얌체 비율이 높은 사회는 삐걱거리게 된다. 사람들 속에 불만이 쌓이고 불신이 생긴다. 성공 제일주의를 내세울수록 얌체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렇다.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아는 게 우선이다. 좀 더 세심하게 이웃을 살피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다. 다른 건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이것이 안 되면 인간의 자격이 없다. 사람살이의 기본은 간단하다. 타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것, 타자의 범위가 사람에서 생물로, 그리고 우주의 모든 자연물로 확장될 때 그 사람의 인격의 폭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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