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노화 현상입니다

샌. 2015. 11. 23. 09:04

몇 달 전에 머리에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갔다. 영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자란다면 내년쯤에는 도깨비 머리에 달린 뿔처럼 될지 몰랐다. 망설이다가 피부과에 찾아갔다. 피부암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레이저로 지지면 된다고 했다. 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었다. 왜 이런 게 생기느냐고 물었더니 의사 대답은 간단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초여름에는 눈에 멍울이 맺힌 걸 발견했다. 흰자위에 물방울처럼 생긴 게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색깔이 없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시력을 잃지 않는가 싶어 바로 다음 날 안과에 갔다. 불안한 내 마음과 달리 의사는 태평하게 말했다. "노화 현상입니다." 보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냥 무시하고 지내라는 것이었다.

 

올해는 유별나게 병원 출입이 잦다. 봄에 폐렴으로 입원한 걸 비롯해서, 치과,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에 순례하듯 돌아다녔다. 이렇게 병원 신세를 자주 지게 되는 건 난생처음이다. 의사한테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노화로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에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가을을 보내면서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약한 몸살이 지속되면서 쉽게 지치게 되고 피곤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도 맑지 않다.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신호다. 올해는 활동량도 많이 줄었다. 집에서 빈둥대는 시간이 많으니 몸무게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종합 검진이라도 받아봐야 되는지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이런 때가 되면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기능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들린다. 하긴 60년 넘게 사용했으니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이젠 살살 달래면서 쓸 수밖에 없다. 육체에도 리듬이 있는 것 같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는 많이 시달린다. 그러면 다시 적응이 되어 그 수준에 맞게 살아간다.

 

올해는 내 몸의 불황기다. 소화 기능도 예전 같지 않다. 은연중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맞추면서 살 수밖에 없다. 체념을 배우는 게 노년이 아닌가. 어쨌든 내리막은 내리막이다. 이제 나빠지는 일만 남았다는 건 적적하고 슬프다. "노화 현상입니다." 살아 있는 한 언제든 후렴구처럼 따라다닐 친해질 수밖에 없는 말이 되었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조선인 이유  (0) 2015.12.15
이게 누구로  (0) 2015.12.05
2015년이잖아요  (0) 2015.11.10
국정  (0) 2015.11.07
제 분수도 모르고  (0) 2015.11.02